제 6 호 인류애 충전소
Ep1. 인류애의 반대어 – 정지은 기자 인류애가 생기는 순간들에 대해 떠올려 보았다.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인류애를 느끼는 순간은 꽤나 많은 편인 것 같았다. 추운 겨울, 사람들이 지하철역 앞에서 전단지를 돌리시는 할머니를 지나치지 않고 두 손 꼭 전단지 받는 것을 보는 순간, 대중교통에서 사람들이 어르신들께 자리를 양보하는 것을 목격하는 순간, 꽉 막힌 도로를 지나는 구급차에 길을 터주는 차들을 보는 순간, 아직 사회를 경험하지 않은 아이들의 순수함을 보는 순간 등 말이다. 그러한 순간에는 무언가 마음 한구석이 찡하고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내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할 때의 일이다. 한 할머니께서 키오스크 앞에서 주문하는 법을 모르고는 헤매고 계셨는데, 지나가던 한 학생이 말없이 옆에서 할머니의 주문을 도와주는 것을 보았다. 순간적으로 ‘아, 내가 먼저 가서 도와드렸어야 하는 일인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그 학생이 너무나 예뻐 보였다. 다른 직원분도 느끼지 않았을까 싶어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만 같아요. 인류애가 조금은 상승한 것 같네요.”라는 말을 했더니, 직원분께서 장난스레 말했다. “그런 사소한 것에 인류애를 느껴서 어떻게 할래. 저렇게 당연한 행동, 작은 행동으로 내 인류애는 상승하지 않아.”라고 말이다. 그 말에 반박할 것도 없이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어쩌면 너무나도 사소하고 당연한 행동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궁금증이 생겼다. ‘이런 사소한 것에 인류애를 느끼지 못하고, 그저 인류애가 떨어지는 순간에만 왈가왈부하며 살아간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되는 거지?’ 이미 우리 사회는 그런 사회이다. SNS나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어보더라도 인류애 상실의 순간에 대해서 집중하지, 인류애가 상승하는 순간을 집중해서 바라보지는 않는 것 같았다. 릴스나 숏츠 같은 영상의 댓글만 보더라도 일명 ‘프로불편러’들이 여기저기에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사람들은 익명의 힘을 빌려 사회를 비판하기에 바쁘다. 오죽하면, 이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인류애 충전이라는 말과 함께 여러 짤이 함께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겠는가. ‘찬성’이 있다면 ‘반대’가 있고, ‘행복’이라는 단어에는 ‘불행’이라는 반대어가 존재한다. 그러나 ‘인류애’는 대비되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류애가 상승하고, 상실하는 것으로만 표현하지, 인류애의 반대어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 듯하다. 이는 마치 ‘인류 전체에 대한 차별 없는 사랑’은 부정할 것 없이 당연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삶에서 늘 온전히 짊어지고 가야 할 짐처럼 말이다. 표면적인 것만 보고는 어두운 가십거리에 대해서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를 둘러보고 작은 것에도 인류애를 느끼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가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변해가는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인류애를 느낄 뿐 아니라 저 자신도 직접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며 글을 마무리 짓는다. Ep2. 살아왔던 흔적에 기반하는 인류애 – 이다현 기자 인류애라고 인터넷에 검색하면 기사가 정말 많이 나온다. 유튜브에 검색해도 시민들이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남을 도왔다는 뉴스가 쏟아져 나온다. 차 사고로 차가 전복되자 망설임 없이 차에서 내려 탑승자를 구조하고, 차를 바로 세운다. 아기가 아파 응급실을 가다 접촉 사고를 낸 엄마를 상대 차주가 안아서 달래준다. 코로나로 어려운 상황, 코로나로 가게 사정이 어려워진 사장님은 오천 원을 쥐고 치킨집 앞에서 머뭇거리는 형제에게 치킨을 내어준다. 이처럼 우리는 사회의 시민 영웅을 보면서 “인류애가 생긴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이 모두 특별한 사람이라서 다른 사람을 도운 것은 아니다. 그냥 사람 목숨이 우선이니까, 딸 같아서, 애들이니까, 같은 작은 이유로 사람을 도운 것이다. 인류애는 어디에서 기반하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살아왔던 흔적이 아닐까 싶다. 내가 받았던 친절을 갚고 싶어서, 나도 아끼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냥 나는 인간이니까. 앞서 나온 사례들이 가벼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인류애를 느끼는 순간이라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대중교통에서 자리 양보하기, 힘들어하는 사람 위로해주기 같은 것도 인류애가 생기는 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결과물의 크기가 어떠하든 사람의 마음에서 이어진 일이니, 말이다. 인류애를 느끼는 순간이라는 것은 크게 드문 일이 아니라고 말해 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 경험을 떠올려보려고 하니 별로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인류애의 기반을 찬찬히 되짚어 보기 전까지 인류애를 느끼는 순간이 커다란 사건에만 있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다. 휴대폰 갤러리앱을 뒤적이다 나는 한 가지 사건을 떠올릴 수 있었다. 얼마 전 등굣길에 지하철을 기다릴 때였다. 문이 열리고 지하철에 탑승하려는 찰나, 어린아이가 탄 유아차의 바퀴가 열차와 승강장 사이에 끼어버린 것이다. 아이의 어머니는 유아차를 놓지 못하고 안절부절하고 있었고, 사람들이 순식간에 모여 유아차의 바퀴를 빼내고 안전하게 옮겨주었다. 그 사이에 있던 나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 순간에는 인류애를 느꼈다기보다는 놀람과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역에 대한 생각이 컸던 것 같다. 인류애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는데도 말이다. 물론 여기서 환경 개선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류애를 느끼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당장 순간에 충실한다면, 순간에 느낀 선의가 더 크게 다가오지 않을까. 그리고 그 인류애가 또 다른 선의로 이어질 수 있고 또 다른 인류애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을 겪을 수 있으니 말이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지 말자.' 유명한 말이 있다. 인류애도 이와 같다. 우리가 사소한 선의를 당연하게만 여기고 살아간다면 언젠간 그 선의는 사라질지 모른다. 인류애를 느낀 순간을 커다란 사건에서 찾기보다는 일상 작은 일에서부터 하나하나 찾아나가고, 먼저 실천해 본다면 인류애를 더욱 많이 느낄 수 있는 따스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p3. 경주 여행에서 마주한 인류애 – 김나현 기자 ‘인류애를 느끼는 순간’. 단체 기사의 주제가 정해지고 곧장 떠오른 소재가 있었다. 무작정 떠난 경주에서의 기억이 바로 그것이다. 행복의 순간도, 절망스러운 순간도, 분노도 기쁨도 슬픔도, 감정은 다양한 이유로 발현되지만 그중 제일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람을 마주하며 느끼게 되는 감정이고, 그런 건 예상치 못한 뜻밖의 순간에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 이야기는 너무 사소해서 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까지 포괄하진 않겠지만, ‘이런 사람/삶도 있구나’ 하고 우리의 앞날에 희망을 투영해 본 순간 정도로 생각하며 읽어 주길 바란다. 지난 여름, 학기를 무사히 마치고 친한 친구 몇 명과 경주로 짧은 여행을 떠났다. 최대한 경비를 아끼느라 떠나는 길은 피곤했고, 날씨는 매우 습했으며, 도착 후에도 내 마음처럼 움직여지지는 않았다. 여행에는 많은 변수가 있기 마련이고, 우리는 대체로 그 변수를 즐기는 편이었지만 그때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카페에서는 직원의 예의 없는 태도에 조금 화가 났었고, 가고자 했던 식당의 긴 대기 시간을 참지 못하면서 계획이 틀어졌다. 답답함과 허기짐을 동시에 느끼며 ‘될 대로 돼라’는 생각으로 정처 없이 주변을 돌아다니기로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길가에 예쁘게 핀 능소화를 발견했고, 덩그러니 놓여 있는 입간판도 봤다. 맛스러운 빵이 그려진 입간판을 보자마자 홀린 듯 그 가게로 걸음을 옮겼는데, 그때의 선택이 이 여행을 더 즐길 수 있도록, 오랜만에 인류애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줬다. 향긋한 빵 굽는 냄새와 사장님의 따스함이 묻어나는 그 가게는 중년의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빵집이었는데, 사장님은 우리를 친근하게 맞이하며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친절하게 말을 건네 오셨다. 경주 너무 좋지 않냐며 재치 있는 홍보도 하시고, 약도까지 그려가며 주변에 가볼 만한 곳과 사장님의 단골 맛집을 추천해 주셨는데, 그 따듯함이 여러 상황으로 지쳐있던 우리의 기분을 회복시켜주는 것 같았다. 흥미로운 스몰토크를 마치고는 사진이 잘 나온다는 야외 포토스팟을 소개하며 사진을 찍어주셨고, 그 덕에 생각에도 없던 단체 사진을 남길 수도 있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가게 주변 길고양이들의 밥을 챙겨주는 일도, 사장님 부부에겐 당연한 듯한 일상이었다. 무던한 듯 자연스럽게 베풀어지는 그곳의 정이 너무나도 인상 깊었다. 자신의 가족들에게도, 낯선 손님에게도, 가게 주변의 길 고양이에게도 아낌없이 따듯함을 나눈다는 점에서 인류애를 느꼈다. 그곳에서 사장님의 정을 느끼며 앞으로 살아갈 우리의 세상에도 정 많은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랐다. 사람에게 상처받는 순간도 있겠지만, 다시 사람으로 치유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인류애를 느끼는 순간은 꼭 특별한 계기나 조건을 요하지 않음을 느꼈다. 그 순간이 엄청나게 특별해야 될 필요도 없더라. 그냥 무던하게 살아가다가 어떤 사람의 ‘몸에 밴 다정’을 마주할 때 ‘인류애’를 느껴볼 수 있고, 그 기억으로 다시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Ep4. 다시 생각해 본 단어, ‘인류애’ – 이소명 기자 오늘은 ‘인간’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해. 그래, 바로 인류애에 대해서 말이야. 요즘 친구들과 이런 말들을 자주 하지 않아? “오늘 출근길에 인류애 박살났어.” “인류애 충전이 필요해.” 인류는 ‘세계의 모든 사람’을 뜻 해. 그러니깐 인류애는 ‘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지. 이렇게 사전적 의미를 두고 생각해보니, 호기심이 발동하는 부분이 있더라. 내가 최근에 인류애를 잃었다고 말을 뱉었던 건 퇴근길 지하철에서 뒷사람에게 밀려 넘어졌을 때였어. 전 인류 중 단 한 사람에게 밀려 넘어진 건데, 전 세계 인구 그러니깐 인류 전체에 대해서 사랑을 잃었다고 말한 거야. 조금 웃기지 않아? 또 한 번은 날이 추워졌길래 동네 작은 슈퍼에서 핫초코를 찾았는데 없더라고. 그때 주인 할머니께서 “파는 건 없지만 내가 먹는 건 있지”라면서 핫초코 한 봉투를 주셨어. 집에 돌아가며 이런 게 인류애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할머니께서 주신 핫초코 한 봉투로 난 전 인류를 사랑하게 되었어. 우리는 세계 모든 인간에 대한 사랑을 1초 만에 얻고, 또 1초 만에 잃기도 해. 인간은 그만큼 사랑에 예민하다는 거지. 요즘 사회를 되돌아봤을 때 너무 각박하고 차갑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뿐만이 아닐 거야. 사실은 모두 마음 한편에서 ‘애’(愛) 그러니깐 사랑을 찾고 있을 텐데 말이야. 그래서 SNS 상에서는 <인류애가 충전되는 순간 Best 5>과 같은 제목으로 실험카메라 영상까지 만들더라. 길 잃은 아이를 도와준다던가, 다리에서 자살하려는 사람에게 다가가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을 건넨다는 내용으로 말이야. 너무 자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도 해서 눈살이 찌푸려 질 때도 있지만, 이렇게까지 해서 인류애를 충전해야 한다는 현실이 조금 슬프기도 해. 왜 그런 말이 있잖아, ‘인간은 사랑으로 살아간다’. 어쩌면 요즘 우리가 일상에서 인류애를 자주 언급하는 모습이 이 말의 진리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어. 인간은 무의식중에서도 계속 사랑을 찾고, 사랑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거야.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에게 묻고 싶어! 너의 시각에서 ‘인류애’는 어떤 의미야?
제 6 호 인류애 방전소
EP1. 아니 진짜로… 왜 그러시는 거에요? – 송지민 기자 #1. 불편한 버스 (버스에 탄다. 카드를 찍는다. 고개를 들어 앉을 자리를 스캔한다. 모두가 창가 자리는 비운 채 통로 쪽 의자에 앉아있다. 다가간다. 아무도 옆자리로 이동하려는 기색이 없다. “어… 죄송한데 안으로 좀 들어 갈게요.”라고 말하며 비집고 들어간다. 아닐 때도 있지만 대개 내가 먼저 ‘STOP(정차)’ 버튼을 누른다. 아무래도 일어서서 비켜줄 것 같진 않다. 아니나다를까 가만히 있거나 무릎만 스윽 옆으로 돌린다. 그럼 나는 “내릴게요.”라 말하며 다시 어렵게 비집고 나간다.) 꼭 창가 자리로 비켜달라는 건 아니에요. 근데 옆자리에 앉으려 하거나 내리려 할 땐 조금 비켜 주시면 안 될까요?ㅠㅠ 짐이 많거나 옷이 두꺼운 계절엔 정말 힘들단 말이에요! 제가 가방이나 옷으로 당신을 치고 가길 바라시는 건 아니잖아요... 저도 치고 싶지 않아요. 우리 조금만 더 배려합시다! #2. 불편한 카페 스타벅스 3층은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의 것?! 언제부터 카페 위층들이 조용히 공부하는 곳이었나요? 혹시 저 몰래 이미 정해진 걸까요?ㅠㅠ 오랜만에 만난 친구랑 커피와 디저트를 즐기면서 재밌게 얘기하고 싶어요. 카페는 그러려고 만들어진 곳이잖아요… 어학사전에도 카페는 ‘음료수를 마시거나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라고 나와 있다고요! 그런 카페에서 모두가 이용하는 공공장소이니 시끄럽게 떠들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힐끗힐끗 쳐다보시면 순간 여기가 도서관이었나 싶은 착각이 들어요… 내가 내 돈 내고 커피 마시면서 눈치를 봐야 합니까?! 커피 마시고 싶은데 주변 소음에 방해받지 않게 조용히 공부하고 싶은 분들께는 ‘스터디카페’라는 곳이 있다는 걸 알려드립니다^^ #3. 불편한 댓글 프로불편러: 매사 예민하고 별것도 아닌 일을 과대 해석해서 논쟁을 부추기는 유난스러운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 이들은 쓸데없는 것을 트집 잡고 ‘이거 나만 불편한가요?’라는 말과 함께 동조를 이끌어 냄. 어느 기사나 영상 댓글들에 한결같이 존재하는 그들은 바로 프로불편러.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소식이 빠른지, 자기네끼리 공유라도 하는지 각종 이슈들에 득달같이 달려들어 불편함과 불쾌함을 늘어놓곤 하는데, 보는 우리도 정말 불편합니다! 표현의 자유? 웃기고 있네요. 당신네들이 표현의 자유를 앞세워 쓰는 댓글들은 우리가 보기엔 명예 훼손과 분란 조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거든요?! 무조건적인 혐오와 편 가르기는 이제 그만하고, 불쾌함을 드러내거나 논점을 제기하고 싶을 땐 합당한 논리와 올바른 언어를 이용해보자고요. 그런데 잠깐만… 어쩌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프로불편러? EP2. 단지 슬픈 날 – 임지혁 기자 온종일 배탈에 걸려서 누워있다가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오늘은 건강검진이 있는 날, 국가가 그래도 건강 좀 챙기며 살라고 최소한의 배려를 해주는 소위 세금값 하는 날이다. 그런 영광스러운 날에 배탈을 앓고 있다니, 다행스럽게도 내시경 등의 검사는 없이 일반 검진만 있으므로 다소 안심하고 옷을 꾸렸다. 요즘은 날이 추워서 단단히 챙겨 입어야만 한다. 그 날 아침에 대해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배탈이 나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던 상황에서 혈액 검사를 위해 전날 21시부터 시작된 금식으로 나는 굉장히 초췌해져 있었다. 다행히 그날 아침에는 속은 많이 괜찮아졌지만 예약을 잡아둔 병원으로 걸어가면서 눈에 들어왔던 것은 오로지 빵집, 식당, 맛있는 수제 푸딩을 파는 과자집, 이런 것들 뿐이었다. 반대편에서 어디서 샀는지 붕어빵 하나를 물고 오는 어떤 아이를 나는 부르주아를 바라보는 프롤레타리아의 눈으로서 바라보았다. 어렵사리 가벼운 지갑의 도움으로 금식을 지켜내는데 성공하고서는 제시간에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문진표를 작성하고, 키와 몸무게를 측정하면서 본격적으로 건강검진이 시작되었다. 시작하기도 전부터 엉망이던 건강검진은 지속적으로 혼돈스러워졌다. 혈액검사를 위해서 팔을 내밀었는데, 무언가 주사바늘이 들어오는 느낌이 평소와 많이 달랐다. 어찌어찌 혈액 채취에는 성공한 것 같지만 평소보다도 많이 쓰라렸던 팔에 그 날 저녁에 보니 피멍이 들어 있었다. 다음으로 엑스레이를 찍기 위해서 방사선과로 이동하였는데, 그곳에는 정말이지 평소보다도 많은 대기인원들이 있었다. 방사선사 선생님도 당황스러우셨던지 빨리빨리 일하려고 하셨지만 접수를 해두고는 나름의 사정으로 다른 곳에 가버린 환자들을 찾아나서는 일 앞에서 그런 노력들은 번번히 좌절되었다. 오랫동안 기다리다가 내 이름이 불리자, 그제서야 약간의 안민의 눈초리를 보이며 촬영기 앞에 서게 되었다. 필자는 그러면서 결심하게 되었다. 이런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건강해져야만 한다. 검사가 끝나고는 든든하게 밥을 먹기로 하자. 이번 검사에서 특별히 이상이 있지는 않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는 곧바로 근처의 햄버거 집으로 향한다. 마음에 담아두었던 신제품 메뉴 하나와, 배고프니 햄버거를 하나 더 주문하고서는 드디어 이 배고픔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속에 햄버거 세트를 먹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제서야 깨닫는다. 아차, 곧바로 오후에 치과 검진을 잡아뒀다. 탄산음료에 대해서 얼마나 잔소리를 들을지. 게다가 배탈에서 회복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리고 빈 속에 과식을 해서인지 속은 더더욱 부글부글해졌다. 나중의 일이지만 우편으로 도착한 검진 결과표의 수치들은 작년보다도 더 부정적이었다.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다. 단지 슬픈 날이었을 뿐이다. EP3. 발전하는 세상 속 우리의 인류애 – 이선민 기자 우리가 일상에서 크게 눈치채지 못하지만, 어느 순간 불편함을 느끼는 부분들이 있다. 나는 ‘기술의 발전에 적응해 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불편한 순간을 느끼게 되었다. 첫 예시로 ‘키오스크’를 꼽고 싶다. 키오스크는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급격하게 보급되었음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코로나의 확산을 막기 위해 비대면 생활이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상명대 언덕 아래 돈가스 가게만 봐도 앉은 테이블에 있는 태블릿을 이용하여 주문하고, 바로 결제까지 끝낼 수 있다. 우리는 학창 시절부터 스마트폰과 같은 전자기기의 사용이 익숙해져서 키오스크는 매우 편리한 존재라고 여긴다. 굳이 타인과의 불필요한 대화 없이 혼자 밥을 먹는 상황에도 유용하게 사용되곤 한다. 언젠가 동생 졸업식 날, 근처 패스트푸드점에 방문했을 때 키오스크가 생각보다 편리함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야 너무나 익숙하게 키오스크를 사용하지만, 연령대가 조금만 높아지면 여러 프로세스를 거쳐야 결제가 가능한, 이 키오스크에 어려움을 쉽게 느낀다는 것이다. 내 옆 키오스크를 이용하신 한 어르신은 나보다 일찍 키오스크 앞에 서 계셨음에도 쉽사리 음식 메뉴를 선택하고 결제창으로 넘어가지 못하셨다. 나는 쉽사리 연배가 있으신 분께, ‘괜찮으시다면 도와드릴까요?’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혹여 내 딴에는 도움이고 선의라고 판단하고 건넨 말이, 그분들에게는 자신은 자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람처럼 보이나? 라는 생각을 하시게 될까 싶어서다. 망설이다 ‘혹시 결제 부분만 도와드릴까요?’라고 여쭸고, 어르신은 정말 고맙다고 말씀과 끝에는 “기술이 발전하는 건 좋은데, 나 같은 사람은 영영 이용 못 하는 건 아닌지 몰라”하고 웃으며 말씀하셨다. 이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키오스크는 누군가를 거치지 않고 사용이 가능하다는 간편함과 편리함 등의 장점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그 누군가를 거치지 않기에 생기는 불편한 순간들이 있다는 사실을 직면하게 되었다. 키오스크로 주문하게 되면 다가오는 불편한 순간들이 뭘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불편한 점은 모두를 위한 편리함이 아니라는 것을 꼽을 수 있다.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누군가는 낙오될 것이고, 이 누군가는 점점 많아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 최근 야구 한국시리즈 예매를 떠올렸다. 야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최근 이 기사를 봤을 수도 있다. 한국시리즈 진출 팀인 LG와 KT의 경기를 보고자 하는 사람들은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 LG는 프로야구 초창기 팀이기에 오랫동안 응원을 해온 팬들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 온라인 예매를 통한 티켓 예매가 난항을 겪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 기사를 보고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오랜 시간 동안 해당 야구팀의 팬이었지만, 표를 구하지 못해 야구 경기장 밖을 맴도는 어르신들이 많았다는 기사였다. 찾아보니 100% 온라인 예매였다. 취소표가 풀리게 되면 일반적으로 오프라인에서도 예매할 수 있었지만, 요즘엔 온라인에서 풀리는 취소표는 다시 온라인에서 예매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오프라인으로 예매할 수 있는 표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기에 인터넷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은 표를 구하지 못하고 경기장 밖을 서성거리신 것이다. 이 상황은 명절마다 박 터지는, 국민 티켓팅이라고 불리는 ‘기차표 예매’와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그 기사 속 인터뷰 중 하나는 “딸이 온라인으로 표를 예매해 줘서 경기를 직관할 수 있었다”였다. 누군가는 도움이 없으면 이 발전하는 기술을 따라잡지 못하고 맥없이 불편한 순간이라고 되새기며 인내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간편함과 서로의 편리성을 위해 기술은 항상 발전하고, 우리는 발전하는 방향에 몸을 실으며 따라가고자 노력한다. 모두가 똑같이 적응해 가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기술 발전에 적응해 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언젠가 우리도 겪게 될 일이 될 것이라고 느꼈다. 머지 않아 우리의 부모님이 직면할 상황이라 생각하니 기사를 쓰면서 더욱 와 닿게 되었고, 이 순간이 나에게 왜 불편하게 다가왔는지를 인지할 수 있었다. 이 불편한 순간을 해소하기 위해 단순히 특정 누군가를 위하는 방안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그저 모든 이들이 함께 혜택을 누리고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바란다.
제 5 호 오늘도 상명인은 무사히 통학을 마칠 수 있을까요?
편집장 이소명 202210058@sangmyung.kr 상명인은 걱정과 함께 매일 아침을 시작한다. 통학길이 어디서 시작하는지에 따라 고민의 내용은 제각각이겠지만, 걱정스러운 마음은 모두 같다. 가장 큰 고민은 언덕을 걸어 오를지, 버스를 타고 오를지 아니면 최후의 수단으로 택시를 탈지일 것이다. 그렇다. 상명인의 가장 큰 고역은 그토록 유명한 ‘언덕’이다. 상명대학교 언덕은 국내 대학 언덕 중 아주 높은 편으로 유명하다. 상명대학교는 입구에서 정문까지 높은 언덕을 오르고 나서도, 정문부터 후문까지 계속 언덕의 형태를 띤다. 그래서 우리 학교생활을 늘 함께하는 ‘언덕’이 우리에게 얼마나 크고 작은 해(害)를 끼치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 상명인의 통학 이야기 우선, 상명인들의 아침 통학길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7016번 버스를 통해 통학하는 A양의 이야기이다. 주에 오전 9시 시작 수업이 2번, 오전 11시 시작 수업이 1번 있는 A양은 ‘KT 광화문지사’ 정류장에서 7016번 버스를 기다린다. 그녀의 통학길에 눈치싸움은 필수이다. ‘KT 광화문지사’ 정류장은 지하철 광화문역에서 내리는 사람들의 환승 구역으로 탑승자가 많은 정류장이다. 그 전에 서울역이나 시청역에서 이미 많은 탑승자를 태운 만차 상태로 오는 경우도 많기에 기다리는 사람 중 일부만 타거나, 아예 버스가 멈추지 않고 지나치는 경우도 많다. 서대문 08번 버스를 타는 B군의 이야기이다. B군은 학교 정문에서부터 도보 20분 거리에 거주하지만, 언덕을 오르기 힘들어 버스도 자주 애용한다. B군은 주에 오전 9시 2번, 10시 1번, 11시 1번 시작 수업이 있다. 10시 시작 수업에는 버스를 타기 가장 수월하다. 하지만 이번 학기 중 11시 시작 수업에는 사람이 많아 버스를 한 번도 타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종로 13번 버스를 타는 C양의 이야기이다. 평창동 스뮤 하우스에 거주하는 그녀는 주에 오전 9시 시작 수업이 3번 있다고 한다. 언덕 아래까지 다른 버스를 타고 온 그녀는 언덕 아래에서 종로 13번 버스를 기다린다. 종로 13번 버스의 배차 간격은 15분이라고 하지만 매일 아침 들쑥날쑥하기에 예측하기 어렵다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 사람이 많은 날이면, 수용 인원이 적은 종로 13번 버스에 이미 사람을 가득 채워오거나 언덕 아래 정류장에서 길게 줄을 서야 하기에 더욱 탑승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 통학길이 위험하다? 상명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파악할 수 있던 언덕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크고 작은 ‘해’(害)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첫째, 이른 아침 시간에 언덕을 오르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아침 운동을 한다며 가볍게 여길 수도 있지만, 1분 1초가 아까운 통학 시간에 높은 언덕을 급히 오르다 보면 건강에 무리가 올 수 있으며, 정작 집중해야 할 수업 시간에 지장을 줄 수 있다. 실제 이야기를 나눈 학생 중 상당수가 언덕을 급히 오른 뒤 땀을 식히거나 목을 축이기 위해 수업 앞부분에 집중을 못 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둘째, 적절한 탑승 인원을 초과한 인원이 버스에 탑승하게 되면 승객들의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다. 2022년 10월에 발생한 이태원의 아픔을 기억한다면, 해당 사건과 조금이라도 유사한 일에 관해선 초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하지만 10월의 아픔 후에도, 출·퇴근길 혼잡도가 220%까지 다다른 ‘김포 골드라인’ 사건이 이어 논란이 됐다. 유사한 모습을 우리 상명대학교의 통학길에서도 볼 수 있다. 상명대학교의 통학길을 체험해 보기 위해 탑승 인원이 가장 몰리는 시간대에 직접 버스에 탑승해 보고자 한다. 그래서 [상명대학교 서울캠퍼스 2023학년도 제1학기 학과별 시간표]를 바탕으로, 요일별 그리고 시간별로 상명대학교 오전 수업 수를 비교해 보았다. <표1. 상명대학교 오전 수업 비교 – 2023학년 1학기 기준> 표에 따르면, 목요일 11시 시작 수업이 52개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11시 시작 수업이 첫 수업이 아닐 것을 고려해 9시 시작 수업 통학 시간대에 맞춰 버스를 탑승하러 가보았다. # 직접 체험해 보다. 우리의 통학길 수요일 오전 8시 23분 ‘KT 광화문지사’ 정류장에 도착해 7016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출근 시간대와 겹쳐 직장인들과 대학생들이 섞여 정류장 근처는 복잡한 모습이다. 남은 시간을 안내하는 전광판에는 7016 버스의 남은 시간이 4분임을 알리고 있다. 곧 있으면 버스가 도착할 텐데 옆에 있던 상명대학교 학생은 언덕을 오르는 7016이 아닌 언덕 아래까지만 가는 다른 버스에 탑승하려는 듯하다. 이유를 물으니, “7016이 거의 만차로 올지도 몰라요. 아직 9시까지 여유가 있으니, 학교 입구까지만 가는 버스를 타고 종로 13으로 환승하려고요.”라고 답하였다. 반대쪽에는 처음 만난 듯한 3명이 짧은 인사를 나누고 함께 택시에 탑승한다. 대학생 커뮤니티 앱인 에브리타임이나, 카카오톡 오픈 채팅을 통해 택시 탑승 동행을 구해 택시비를 나누는 것이다. ‘7016’ 숫자가 멀리서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눈치를 보며 정차선 도착 전인 버스 쪽으로 향할지, 정차선에서 기다릴지 고민하며 몸을 이리저리 옮겼다. 드디어 모습을 보인 버스 내부는 이미 사람이 많이 차 있었다. 문이 열리자 이미 사람들끼리 붙을 틈이 없어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탑승자들은 발자국을 조금씩 옮기며 익숙한 듯 새로운 탑승자가 탈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버스 안에 발을 올리자, 숨이 막히는 듯했다. 대부분의 창문이 열려있고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너무 많아 공기 순환이 잘되지 않았다. 버스가 출발하였지만, 손잡이가 손에 닿지 않았다. 두 다리로 위태롭게 중심을 잡았다. 결사코 더는 새로운 탑승자가 들어오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다음 정류장인 경복궁역에 도착하자 대여섯 명 정도가 앞·뒷문으로 더 탑승한 것 같다. 시내버스는 앞문으로 탑승하고, 뒷문으로 하차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한 명이라도 더 탑승하기 위해 뒷문 탑승을 상황에 따라 허용하는 듯하였다. 더 많은 사람이 탑승하자 손잡이를 잡지 않더라도, 사방에 있는 승객들로 인해 몸이 휘청이지 않았다. 학교에 도착하자 8시 50분을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아침 시간이라 차가 막히고, 다음 버스에 탑승하라는 기사님의 외침에도 계속 승객이 타다 보니 기존보다 많은 시간이 할애되었다. 중간중간 옆 사람과 부딪히거나 발을 밟게 되는 등 서로가 원치 않은 접촉이 발생하였다. # 버스 안에서 불쾌함 몰리는 시간대에 버스에 탑승해 보니, 크고 작은 위험이 많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우선 버스가 급출발 또는 급정거하여 누군가 넘어진다면 줄줄이 그 충격을 받아 내야 할 정도로 탑승객이 밀접해 있다. 그래서인지 승차문 또는 하차문과 승객 사이의 적정 거리도 확보되지 않았다. 버스 문이 닫히기 위해서는 문과 승객 사이의 어느 정도 거리가 확보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정류장마다 위험해 보이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그리고 사방에 있는 승객들과 계속해서 서로가 원치 않은 접촉을 해야 했다. 한 걸음마저 움직이기 어려워 서로의 몸이 닿아있는 경우를 많이 목격할 수 있었다. 비켜주려 발걸음을 옮기면 되려 반대쪽 사람과 살을 맞닿아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고개를 돌리기조차 힘들 정도로 많은 인원이 뒤엉키다 보니 이를 악용한 범죄가 발생할 여지가 다분해 보였다. 실제 에브리타임에서 수년째 논란이 되는 일명 ‘7016 변태남’이 있다. 그는 사람이 많은 정류장에서 탑승하여 여성 승객 뒤에 악의적으로 몸을 대거나 비비는 등으로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고 한다. 피해자가 낌새를 눈치챈 듯하면 중간에 내려 다음에 오는 버스에 탑승해 같은 범행을 반복한다. 이처럼 적정 인원을 넘긴 버스는 우리에게 크고 작은 해를 초래한다. # 가능할까요? 안전한 통학… 우리 학교 교통편에 대해 학교는 어떠한 입장을 가지고 있을까? [2022학년도 제2차 학생회대표 총장 간담회 회의록]에서 상명대학교 출입 교통편에 대하여 질의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었다. <사진1. 상명대학교 출입 교통편 관련 학생회대표 총장 간담회 회의록> 결과적으로 학교는 교통편 개선을 위해 서울시와 운수 회사에 요청하여 7016 버스 배차간격을 기존보다 2분 줄였다. 하지만 셔틀버스나 버스노선 신설은 여러 문제로 진행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2분’이 우리에게 얼마나 영향을 줬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버스 문에 신체가 끼어 다쳤다는 사람, 무더위 속 버스 안에서 정신을 잃었다는 사람 모두 우리 상명대학교의 학우들이다. 확실한 건 2분보다 더 직접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우리의 안전을 지켜줄 주체가 누구인지 그리고 안전하게 통학할 수 있는 날이 도래할지에 관해 여러 상명인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 참고 문헌 ] 1. 김태인,‘김포 골드라인’ 혼잡도 220%->191%…여전히 혼잡,Jtbc 뉴스,2023.06.19.,<https://news.jtbc.co.kr/article/article.aspx?news_id=NB12131298> 2. 상명대학교 샘물 통합정보시스템 > 공유와 소통 > 공유,[2022학년도 제2차 서울캠퍼스 학생회대표 총장간담회 회의록.pdf],<https://smul.smu.ac.kr/index.do> 3. 2023학년도 제1학기 수강신청 안내 및 강의시간표 공지,[상명대학교 서울캠퍼스 2023학년도 제1학기 학과별 시간표.pdf], <https://www.smu.ac.kr/lounge/notice/notice.do?mode=view&articleNo=733852&srCampus=smu&article.offset=0&articleLimit=10&srStartDt=2022-03-01&srSearchVal=%EC%8B%9C%EA%B0%84%ED%91%9C&srSearchKey=smu%2C&srEndDt=2024-02-29>
제 5 호 우리가 낭만이 없다고!?
정기자 송지민 202110353@sangmyung.kr #1. 지금 그게 무슨 말이야? 사람들은 지난 몇 년 전부터 꾸준하게 우리 대학가의 모습을 보며 낭만이 사라졌다고들 해. 그런데, 지금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가 낭만이 없다는 거야? 나는 아직 이십 대의 청춘인데! 도대체 왜, 어떤 이유에서 그런 말들을 하는 거야? #2. 그들이 말하는 우리. 낭만 없는 우울한 대학가... '새내기의 3월'은 옛말, 캠퍼스 낭만 사라진 '코로나 세대', 연대 의식이 사라진 대학 캠퍼스. 이게 바로 그들이 말하는 우리야. 이전에는 새 학기 때면 학과, 학생회, 동아리 등 신입생 환영회로 대학가 주변이 북적였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대. 왜냐고? 청년 실업과 경기 불황 등의 이유로 신입생은 곧 '조기 취준생'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너나 할 것 없이 토익학원과 고시학원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야. 그렇게 학생들은 취업 준비에 집중하면서 학교생활은 뒷전으로 미루게 됐고, 자연스레 동아리들은 점차 사라지고 대학가 주변 주점들도 한산해지게 된 거지. 그러다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했고, 우리는 학교조차 갈 수 없게 됐어. 대학에 입학하면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연애도 하며 캠퍼스의 낭만을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신입생들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만 거지. 행복한 대학 생활을 꿈꾸며 고3(혹은 N수) 대학 입시 생활을 버텼을 텐데 말이야. 그렇게 약 2년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던 학교를 그제야 처음으로 다니게 되니, 학생들은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 누가 알겠어. 이미 선배들은 모두 졸업하고 이제는 자기가 고학번이 되어버렸는 걸. 작년 여름, 한창 화두가 되었던 모 대학교의 청소·경비 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민·형사소송 사건 기억나? 세 명의 학생이 노동자들의 집회로 인한 소음 때문에 학습권이 침해된다며 소송을 걸었었지. 그 사건으로 세간에서는 우리 모두를 마치 개인주의적인 성향 때문에 연대 의식을 잃어버린 세대로 인식하는 것 같아. 물론 우리 세대가 갈수록 개인주의 성향이 짙어진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게 과연 잘못된 걸까? 그리고 이렇게 된 상황이 우리만의 잘못일까? 우리는 어려서부터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하며 그다음으로 가족과 친구, 그리고 이웃으로 퍼져나가는 것이라고 배웠잖아.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좋은 대학, 좋은 직업을 가져야 '성공한 어른'이 되는 거라고 가르쳤으면서. 아, 그렇다고 내가 그 학생을 옹호하는 건 아니야.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엄연히 다르다는 거 알지? 이기주의는 자신의 이익만을 중시하여 타인과 사회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개인주의는 사회의 이익에 앞서 자신의 가치를 더 중시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 둘을 비슷한 결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더라고. 다소 민감한 주제이다 보니, 나는 여기서 그만 말할게! #3.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아무리 요즘 대학생들은 낭만이 없다고 한들, 내가 볼 때 지금 우리는 대학 생활을 충분히 잘 즐기고 있는 것 같아. 물론 코로나 학번들은 안타깝게 됐지만 말이야. 혹시 다들 작년 축제 기억나? 여러 학과와 동아리들이 준비한 다양한 콘셉트의 부스와 가지각색의 먹거리들, 그리고 기대에 찬 얼굴로 캠퍼스를 누비는 학생들을 난 기억해. 아티스트 공연으로는 싸이랑 잔나비가 왔었잖아? 그때 나는 무대 앞에서 시큐리티를 섰는데, 아티스트 공연에 환호하며 같이 뛰고 있는 내 앞의 수백 명의 학생들을 보고 있으니 정말 묘한 감정이 들더라. 뭔지 모를 안쓰러움과 애틋함 그사이... 그런 기분이 들었어. 2년 만에 학교로 돌아와 즐긴 축제를 기점으로 우리의 캠퍼스는 점점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것 같아. 학교 주변의 새로 오픈한 식당과 카페, 그리고 다시 활성화된 MT와 각 단대별로 진행하는 행사들까지 말이야. 이외에도 시험 기간의 과방에 모여 다 같이 배달 음식을 시켜 먹으며 각자의 한탄을 늘어놓는 모습을 보면 되게 웃음이 나. 하는 말들은 모두 '너무 힘들다', '공부 진짜 하기 싫다'와 같은 부정적인 말들인데, 그런 말들을 친구들과 나누는 순간만큼은 다들 웃고 있거든. 되게 모순적인 그 모습이 나는 정말 웃기고 즐거워. 그리고 가끔 사범관 앞 잔디밭을 지나가다 보면 친구들끼리 혹은 연인끼리 벤치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며 다정히 얘기하는 모습을 보는데, 그렇게 편안하고 행복해 보일 수가 없더라. 이런 것들이야말로 진짜 캠퍼스 낭만 아닐까? 아직도 우리가 낭만이 없다고 생각해?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4. 사실 난, 낭만 빼면 시체야. 듣기엔 조금 웃길 수도 있겠지만, 사실이야. 나는 낭만을 좇으며 살아가는 멋진 이십 대거든! 그럼, 이제부터 내가 지금까지 우리 캠퍼스에서 찾은 낭만들을 얘기해줄게.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나는 사범관 앞 잔디밭 벤치에 앉아 멍때리며 노을을 보는 걸 좋아해. 잘 몰랐는데, 노을이 질 때 하늘의 색이 생각보다 빠르게 변하더라고? 하얀 구름과 함께 파랗던 하늘이 점차 핑크색과 보라색으로 변하고, 그다음에는 주황색으로 물드는데 정말 예뻐서 눈을 뗄 수가 없더라. 그리고 그런 광경을 보는 데에 30분 안팎이면 충분한데, 어때? 개강하고 시험 기간이 되기 전에 여유롭게 시도해볼 만하지 않아? 그리고 우리 학교가 고지대에 있는 만큼 위에서 보는 풍경이 되게 운치 있는 거 알지? 공강 시간에 친구랑 같이 밥 먹고 소화시킬 겸 얘기하면서 캠퍼스 한 바퀴 스윽 돌면 리프레쉬도 되고 좋더라. 특히 에스컬레이터 있는 쪽 큰 바위 위에 올라서면 마치 등산한 것 같은 기분이어서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더라고! 우리 '바쁘다바빠 현대사회'에 살다 보니 날 잡고 등산할 기회가 별로 없잖아? 뒷동산으로 운동하러 간다는 마음으로 상명대학교 등산도 추천할게! 마지막으로는 '캠퍼스 낭만'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인 MT에 대해서 얘기해보고 싶어. 나는 신입생 환영회, 개강파티, 종강파티, MT 모두 경험해 봤는데, 앞선 세 가지는 몰라도 MT까지 그저 술이 목적이 되는 것이 항상 아쉬웠어. 나는 'MT'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바베큐 파티를 한 뒤에 숙소에서 빙 둘러앉아 기타 치면서 다 같이 노래 부르고 밤새 웃고 떠드는 모습이 그려졌거든. 미디어에서 MT가 그런 모습으로 많이 비춰진 까닭인지 나는 항상 그런 그림을 상상했었어. 그래서 이번 여름방학에 계획되었던 MT에서는 나의 이런 로망을 꼭 이루고자 여러 가지 게임들과 콘텐츠를 준비해 갔어. 예능 프로에 나오는 퀴즈 게임들과 팀별로 요상한 포즈를 따라 사진 찍어 오기, 바베큐 파티를 한 뒤에 기타 치며 다 같이 노래 부르기, 그리고 밤에는 노래방 기계와 함께 춤 추기(참고로 우린 독채 펜션에다가 주변 숙소들은 멀리 떨어져 있었어!) 등 정말 너무 재밌었어! 그때 생각이 나서 지금 내가 조금 흥분했는데, 여튼 너희도 나와 같은 로망을 가지고 있다면 꼭 이루고 졸업했으면 좋겠다. #5. 너희들 생각은 어때? 지금까지는 내 개인적인 생각과 경험만 나열한 것 같은데, 너희는 어떻게 생각해? 정말 지금 우리 대학생들이 낭만을 잃은 채 개인주의적으로 살아가는 것 같아?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우린 어렸을 때부터 끊이지 않는 경쟁 사회 속에서 고등학교 입시와 대학 입시를 경험했고, 지금은 취업 시장으로 달려가고 있으니깐 말이야. 당장 내 옆에 있는 동기들과 선후배들이 마냥 친구가 아니라 경쟁자로 보이기도 하겠지. 그건 나도 동의하는 바이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하지만 우리가 항상 그런 건 아니잖아? 사람들의 말처럼 정말 우리 대학에는 이제 낭만이 남아있지 않다면, 지금까지 내가 봐왔던 모습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면서 좌절하다가도 학생회관 앞 꽃나무 하나에 줄줄이 서서 환하게 웃으며 사진 찍는 그런 모습들. 아니면 수업에 지쳐 퀭한 얼굴로 다니다가도 고작 고양이 한 마리에 반짝거리는 눈으로 핸드폰부터 꺼내 드는 그런 모습들 말이야. 이처럼 우리는 서로 경쟁하면서 발전하고, 그리고 그 속에서 함께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며 우정과 사랑을 약속하는 것 같아. 그리고 그게 낭만인 거지. 너희들 생각은 어때? 메인사진_상명대학교 인스타그램_https://www.instagram.com/p/CeLfVQvPt6f/?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id=MzRlODBiNWFlZA==
제 5 호 글구들이 모이는 곳, 자하 교지
정기자 임지혁 201710846@sangmyung.kr 왜 우리는 글을 쓸까? 초고로 작성했던 두 원고에 X자를 긋고는 뚜껑을 뒤에 꽂아둔 파란색 만년필을 지긋이 바라보며 잠시 생각해 보았다. 자하교지는 자하골에 있는 어느 학교의 언론 기관이다. 매년 주제에 맞는 글구를 적어내고 그것들을 모아 편집하고 교정하면서 아담한 책 한 권을 내보이는 일을 하고 있다. 사실 시대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느릿느릿, 다른 사람이 작성한 원고들을 보면서 문장이나 심지어는 단어 단위로 참견을 하면서 모두가 납득할 수 있을 정도의 글을 탈고하는 것이 우리들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코 빠르지 않게 찬찬히 글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다양한 주제들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이 정해지게 되고 곧 그것이 모여서 교지의 색을 이룬다. 교지가 다루는 주제는 다양하다. 학교에 대한 이야기, 세상만사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학술적이거나 문학적이고 심지어는 개인적인 이야기까지도 자하교지는 다룬다. 소속된 기자들이 탈고한 이야깃거리,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투고한 글로 인해서 교지는 더욱 다채로워진다. 학교라는 맥락 속에서 누군가가 생각해 낸 좋은 글, 혹은 작품은 무엇이든지 교지에 담길 수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잡지보다는 먼 옛날 청기사[1]와 같은 연감과 비슷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2023년 7월에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작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영화가 일본에서 개봉했다. 아직 한국에서 방영되지는 않았고 그 내용 또한 필자는 알지 못하지만 미야자키 감독은 “손자를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전한다.[2] 필자도 영화를 보기 위해 현해탄을 넘어볼까 고민도 했지만 현실적으로 그러지는 못한 채 포스터의 알 수 없는 새의 그림과 지긋이 적힌 제목만을 곱씹어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지금 내가 지금 적어가야 하는 글은 어떤 글이 되어야 할까? 그렇게 완성된 우리들의 연감은 어떤 모습이어야 우리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요즈음이지만 우리들의 작은 연감을 우리들이 만족할 수 있을 정도로 편찬하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앞으로의 자하의 방향성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포스터. 사진=Studio Ghibli 교지는 왜 글을 쓸까? 자하교지는 우리 학교의 언론 기관이다. 그래서 언론 기관이라는 단어의 정의와 같이, 세상의 여러 일들에 대한 정보를 취재하며 그것에 자신의 의견을 첨가해 독자에게 기사를 선보이는 일을 하고는 한다. 그렇기에 교지가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 위해서는 언론에서 글을 쓰는 사람, 즉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서 우선 궁구해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초의 먼 옛날에는 글을 좀 쓴다고 하는 사람들이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고는 했다. 시로 유명하면서 의열단 소속이었던 이육사. 최초의 근대 장편 소설을 쓴 친일파 이광수. 남조선로동당의 핵심 인물이던 박헌영. 친일과 독립, 좌우를 막론하고 그 시절에 글을 쓰는 사람들은 기자가 되었다. 그 즈음에 역사가 시작된 우리 학교에서도 그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아마도 글재주를 가지고 있던 선배들이 언론사에 들어와서 학보에서, 교지에서 각자 자신의 글을 적어나가며 여러 기록을 쌓아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자하 교지의 기자라는 직책에 대해서 살짝 첨언하자면 우리 기자들은 시대의 사관을 표방하기도 한다. 한 해의 개인적인 이야기들부터 공적인 이야기들까지, 어느 순간순간을 이루는 여러 이야기들을 싣는 것 또한 그 목표로 두고 있다. 가령 지난 2016년에 있던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에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것은 시국에 대한 자하의 입장을 밝히는 것 또한 목표에 있었지만, 동시에 학교 구성원들과 자하 구성원들의 시국에 대한 의견을 역사에 기록하는 것 또한 주된 목적 가운데 하나였다. 글을 좀 쓴다고 하는 시대의 사관들, 아무래도 그것이 교지나 더 나아가서는 언론사와 기자들이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칭찬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글재주를 가지고는 당대 학생운동, 각종 창작물, 학술논문 등 다양한 주제를 망라하고 다듬어서 교지 한 권에 담아내던 우리들의 선배들은 필자가 존경하고 동경하는 그 대상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그런 기대와는 다르게 작금의 기자라는 직업의 권위는 가히 매우 낮다고 표현해야만 하겠다. 2023년 연초에 한겨레의 편집국 간부는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의 중심에 있는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와 2019~2021년경 9억 원 규모의 비정상적인 금전 거래를 진행한 것으로 드러났다.[3]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을 선정하거나 충분한 취재를 진행하지 않고 기사를 작성하는 경우, 私적이거나 社적인 의도를 지니고 기사를 작성하는 등 언론 윤리에 부합하지 않게 기사를 작성하는 일들은 특별히 언급하기도 애매할 정도로 일상적이다. 우리들은 그 문제들로부터 자유로울까? 물론 자하 교지, 나아가서 교내 언론사들이 화천대유나 여러 부적절한 비리 사건과 연계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만일 우리 교내 언론사들의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그 첫 화면을 보았을 때, 근래의 주요 언론사들의 홈페이지와 같이 자극적이고 사적 감정이 담긴 기사들로 가득 찼다면 그것은 언론이 지향했던, 그리고 지향해야 할 방향성은 아닐 것이다. 혹은 그것이 학교의 홍보 페이지와 다를 바가 없다면 우리 언론이 존재해야 할 필요성을 지우는 일일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들은 오늘날 기울어 가는 기자라는 직업의 권위, 그 현상에서 전혀 자유롭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가령 교내 구성원들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들어볼 수 있을 독자 투고는 그 비중이 줄어들었고, 교내 정책에 대해 언관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기사들도 역시 줄어들고 있다 모든 것들은 그 자신의 대가를 치룬다. 언론은 그 자신의 신뢰를 깎으며 그 자신의 대가를 치루고 있다. 이 현황 속에서 교지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지난 2022년 겨울 동계 교내 언론 세미나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내부적으로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 하지 못하는 것,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해낸 것. 일일히 상세하게 언급하기 어려울 많은 논의들이 있었고 지금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보면 ‘하지 못하는 것’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할 수 있는 일들에 더해서 우리들 스스로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로 결정했다. 학교에 대해서, 교지에 대해서. 우리들 스스로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는 이번의 기획 기사가, 더 나아가서 우리들이 내놓은 방향성이 담길 2023년의 자하가 그 해답의 이정표를 제시하는 것이기를 소망한다. 그렇게 자하교지가 글구들이 모일 곳이 되기를 소망한다. [1] 20세기 초 중부 유럽 일대의 예술가들이 발간한 표현주의 예술 연감. 화가 바실리 칸단스키가 주축이 되었다. [2] 이종길. “미야자키 하야오 10년 만에 신작 “손자를 위해”” 「한겨레」 2022년 12월 13일. https://www.asiae.co.kr/article/2022121322424671356 [3] 한겨레신문사. ” 독자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한겨레」 2023년 01월 06일.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74728.html
제 5 호 변화하는 강의실 내 필기 문화, 변화하는 우리
수습기자 이선민 202115029@sangmyung.kr [강의실 내 필기하는 모습의 변화] “타닥타닥, 사각사각”하며 들리는 소리를 강의실에서 들어본 적이 있는가? 강의 도중에 들리는 이 소리가 수업에 집중하는 학생들의 열정을 반증하지만, 때로는 귓가를 자극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한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강의실 내에 소음 문제로 대학생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 하루에도 몇 개씩 불만 사항이 담긴 글이 올라오곤 한다. 강의실뿐만 아니라 열람실, 라운지에서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강의실 안에서의 전자기기 사용 빈도가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 뒤에는 어떤 배경이 존재하는지 생각해 보자. 과거에 대부분 학생은 수업 자료를 프린트하기 위해 아침마다 프린트 기계 앞에서 줄을 서며 수업에 늦을까 봐 발을 동동거렸던 시절도 있었다. 고작 몇 년 안 된 2010년대의 이야기이다. 자료를 프린트해서 수기로 필기하는 모습은 일상적이었고, 교수도 필기를 위한 전자기기 사용을 꺼리는 모습이었다. 당시 교수에 따르면, “일단 전자기기를 사용하게 되면 강의를 듣던 도중이라도 쉽게 이른바 딴짓의 유혹에 넘어간다고 하였다.” 또한 “수업 내용을 받아 적으면서, 예쁘게 누군가 볼 것처럼 적는 데 집중하여 중요한 강의 내용은 정작 한 귀로 듣고 흘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필기 문화가 바뀐 기점을 생각해 보면 가장 큰 시점은 IT 기술의 발달과 비대면 환경의 활성화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2020년대 들어서 주변만 살펴봐도 전자기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학생을 찾는 게 빠를 정도로 높은 소지 비율을 자랑한다. 내가 듣고 있는 수업의 강의실을 둘러보면, 어느덧 모든 수강생이 전자기기를 사용하며 수업을 듣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많은 학생이 전자기기를 사용함에 따라 제재를 가하는 부분은 확실히 줄었고, 이러한 상황이 자연스럽게 변했다. 이번 기사에서 전자기기 사용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기사를 전개하고자 한다. 즉 ‘전자기기의 사용이 올바른 학업 환경을 조성하는가?’가 중심 주제이다. [전자기기 사용이 올바른 학업 환경을 조성하는가?] 본론에 앞서 ‘디지털 전환’이라는 단어를 먼저 알고 가자. 디지털 전환이란 1990년대 처음 등장한 개념으로 디지털 기술을 사회 전반에 적용해 전통적인 사회구조를 혁신하는 것이다.[1]디지털 전환은 전산화와 디지털화를 거쳐 일어나게 된다. 이렇게 급변하는 기술 발전에 따라 우리도 그것에 맞게 생활이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느덧 초, 중, 고등학교에서는 태블릿을 사용하여 수업을 듣고, 필기하고 숙제를 해결한다고 한다. 이러한 사회 현상을 본다면, 대학생이 전자기기를 사용하여 필기하고 공부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최근 코로나19 라는 특수한 환경 때문에 화상 회의, 온라인 수업처럼 비대면 활동이 활성화되었다. 그로 인해 학생들은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미디어 매체에 노출되는 비중이 높아졌다. 현재 상명대학교에 재학 중인 A 학생의 말에 따르면, 전자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많은 양의 책의 무게를 줄이고, 필기하는 동시에 필요한 정보를 바로 추가할 수 있는 효율적인 장점이 있다고 한다. 이제는 종이책이 아닌 전자책 형식으로 전자기기에서 필요한 수업에서 꺼내 보고,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학생들에게는 가장 크고 매력적인 장점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전자기기 사용이 올바른 학업 환경을 조성하는 데 방해를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누구든 전자기기 사용 중 원래의 목적과 다르게 SNS나 웹서핑하게 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전자기기 자체의 변화가 빠르고, 그에 따라 제공되는 소프트웨어나 콘텐츠 역시 수시로 변화하기에 새롭게 흥미를 끄는 콘텐츠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또한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강의실 및 라운지 내 전자기기 사용에 따른 소음 문제 이슈도 발생하고 있다. 학교 내 공간은 많은 학생이 함께 이용하고 있다. 누군가는 다른 이의 필기 소리에 오히려 집중력을 잃고,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러한 소음 문제는 단순히 어떤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공용 장소를 이용하며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로 자리 잡게 되었다. [언제까지 전자기기의 사용을 부정적으로만 볼 것인가?] 디지털 전환이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일상은 디지털화되고 있다. 디지털화는 현재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도 고도의 발전을 이룰 것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기에 시대적 변화에 따라 우리의 학습 체득 방식과 교육 방식의 변화는 당연하다. 그렇기에 나는 전자기기 사용이 현재 상황에 시기에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해당 변화의 맥락을 잘 파악한 여러 지자체에서 학생들에게 태블릿과 같은 전자기기를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현재 서울의 ‘디벗 사업’을 예시로 들 수 있다. ‘디벗 사업’은 디벗(디지털+벗)으로 서울시에 있는 중학교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태블릿PC를 대여해 수업이나 공부에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위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이 주도적으로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수동적 학습보다는 능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본인의 궁금증 채워 나가면서 단순히 전자기기를 여가의 수단이 아닌 생산적 학습 경험의 도구로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고자 한다고 한다.[2]디지털화 된 세상에서 전자기기의 사용이 불가피하다면, 학습 목적에 맞게 기기의 사용에 대한 교육과 장려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상명대학교에 계시는 B 교수님과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디지털화 흐름에 따라 수업이 변화함을 알 수 있었다. B 교수님은 학생들의 전자기기 사용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신다고 하셨다. 이미 사회가 변했고, 학교 밖 세상은 모두 디지털화되었기에 전자기기를 사용하는 학습 방법은 당연한 변화라고 하셨다. 현재 사회 어디에 가도 이제 전문 분야에서는 종이를 사용하기보다는, 모두 디지털 기기를 사용해서 정보를 저장하고 공유하는 방식을 사용한다고 하셨다. 또한 미래 사회의 학습은 과거와 같이 암기하고 이해하는 학습이 아니라 누군가와 소통하고 많은 정보와 데이터를 학습하고 이를 기초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이를 위해서는 수업 중 전자기기의 사용은 필수 불가결한 것이라는 말씀해 주셨다. [어떻게 하면 효과적인 전자기기 사용이 가능할까?] 기사를 작성하면서 ‘어떻게 하면 수업 시간에 전자기기를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 보게 되었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우리도 변화에 발맞춰 맥락을 잡아 따라가야 한다. 그렇기에 서론에서 언급한 수기로 필기하는 활동이 전자기기의 사용으로 변화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당연한 순서다. 우리가 수업 시간에 전자기기를 목적과 다르게 사용하는 이유에는 수업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습관 또는 태도의 문제가 아니겠냐고 생각했다. 핸드폰을 예로 들어, 스마트폰이 보급된 이후에 학교에서 종종 ‘스마트폰 중독 검사’를 실시해서 학생의 중독 정도를 판단하곤 했다. 즉 수업 시간 도중 목적에 맞지 않은 전자기기의 사용은 평소 자연스럽게 배어 나온 습관의 연장선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우리가 올바르게 전자기기를 사용하여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스스로 통제할 수밖에 없다. 수업을 위한 전자기기 사용은 절대적으로 유익하고,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수업 시간에 전자기기를 보다 효율적이고 올바르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우리가 지금 놓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안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또한 ‘에브리타임’에도 자주 올라오는 강의실 및 라운지 내 소음 문제에 대해 사용자의 배려가 필요하다. 키보드의 타자 소리가 너무 크다면 ‘키보드 키스킨’ 사용을, 태블릿의 필기 소리가 거슬린다면 펜촉에 일명 ‘튜브’를 끼우는 것과 같은 소음을 줄이는 여러 가지 방안을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떨지 제시하고 싶다. 나에게는 별거 아니라고 느껴지는 소리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소음으로 들릴 수 있고, 하나의 소리가 여러 명의 사용으로 하나의 소음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기억하고 서로의 편리한 전자기기 사용을 위한 서로의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1]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홈페이지(tta.or.kr) [2] 김지광, 스마트기기 휴대 학습 「디벗」, 어떤 정책인가요?, 서울교육, 2021 [참고 문헌] 1) 김지광, 스마트기기 휴대 학습 「디벗」, 어떤 정책인가요?, 서울교육, 2021, https://webzine-serii.re.kr/%EC%8A%A4%EB%A7%88%ED%8A%B8%EA%B8%B0%EA%B8%B0-%ED%9C%B4%EB%8C%80-%ED%95%99%EC%8A%B5-%E3%80%8C%EB%94%94%EB%B2%97%E3%80%8D-%EC%96%B4%EB%96%A4-%EC%A0%95%EC%B1%85%EC%9D%B8%EA%B0%80%EC%9A%94/#easy-footnote-bottom-3-10849 2) 김현정 기자, 서울 중1 56.5%, 스마트기기 활용 '디벗 사업' 만족...학부모는 '글쎄', 메트로 신문, 2023-05-14, https://www.metroseoul.co.kr/article/20230514500251 3) 홍상순, 칠판 대신 스마트 기기, 달라진 교실 풍경, 울산 MBC, 2023-05-15, https://www.usmbc.co.kr/article/ip_HetGW_N7Q_or2E-q 4) 한규정. (2014). 스마트 기기 활용교육이 학생에게 미치는 역기능, 정보교육학회논문지, 18(4), 471-482. 5) 샤넬 디파수필 and 이현정. (2021),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국내 대학생의 온라인 학습 현황, 인문사회 21, 12(4), 1265-1276. 6) 김영록, 정미현, & 김재현. (2013), 스마트기기의 교육적 이용 실태 및 활용 방안 연구, 인터넷정보학회논문지, 14(3), 47-55. 7) 메인사진_https://www.nytimes.com/2017/11/22/business/laptops-not-during-lecture-or-meeting.html
제 5 호 우리의 자하(紫霞), 자줏빛 노을은 어디에서 왔을까?
수습기자 이다현 202110233@sangmyung.kr <상명대학교와 보랏빛 노을, 紫霞> “이번 정류소는 자하문 터널 입구, 석파정입니다.” 많은 상명대학교 학생이 이용하는 7016번 버스를 타면 다음과 같은 안내를 들을 수 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조금만 걸으면 인문사회대학관, 자하관이 나타난다. 가끔은 샘물 메시지로 자하 교지가 발간되었다는 소식이 도착한다. 우리는 학교에 오며 자하를 마주한다. 심지어 얼마 전 자하관에 생긴 라운지 이름마저도 자하와 비슷한 자운(紫雲)이다. 자하가 무엇이길래 우리의 곁에 존재하는 것일까? 학교에서 자동차로 약 10분, 종로구 청운동에는 사소 문 중 하나인 창의문이 있다. 창의문은 북문(北門), 장의문(藏義門) 혹은 자하문(紫霞門)으로 불린다. 장의문이라는 이름은 안쪽에 장의동이 있어 만들어진 별칭이다. 왕조의 공식 문서에는 없지만, 민간에서 가장 널리 불린 이름은 자하문이다. 자하문 별칭의 유래는 다양하다. 이 중 가장 신빙성 있는 유래를 꼽자면 다음과 같다. 개성의 송악산 아래에 있는 명승 자하동처럼 골이 깊고 수색이 맑고 아름다워 이름이 붙은 자핫골에 위치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이다. 이름에서부터 다양한 이야기를 안고 있는 자하문은 역사적으로도 많은 의미를 가진다. 이성계는 개경을 떠나 한성을 새롭게 도읍으로 정하는데 경복궁을 비롯한 한성의 성곽과 성문을 쌓았다. 그때 동쪽의 흥인지문(興仁之門), 남쪽의 숭례문(崇禮門), 서쪽의 돈의문(敦義門), 북쪽의 숙청문(肅淸門)이라는 사대문을 만들고, 그 사이 동북쪽에 홍화문(弘化門), 동남쪽에 광희문(光熙門), 서남쪽에 소덕문(昭德門), 서북쪽에 숙정문과 돈의문 사이에 위치하는 자하문(紫霞門)이라는 작은 문을 만들었다. <紫霞의 과거부터 현재까지> 조선시대의 자하문은 사람들이 왁자지껄한 든든한 성문보다는 고요한 성문이었다. 자하문은 풍수지리설에 따라 건설되고 얼마 되지 않아서 폐쇄된다. 성을 짓는 일과 같은 때에만 한시적으로 개방되었고, 연산군 때에는 근처에 사는 이들을 모두 쫓아내기도 했다. 이후 자하문이 역사에서 화려하게 등장한 것은 인조반정 때이다. 1623년(광해군 15년) 김류와 이귀 등이 광해군의 폐위를 논의하고 홍제천에 모인 후 자하문을 도끼로 부수고 들어가 창덕궁을 공격했다. 『인조실록』 1년(1623년) 3월 13일의 기록에는 ‘밤 3경에 창의문(자하문)에 이르러 빗장을 부수고 들어가다가, 선전판으로서 성문을 감시하는 자와 마주쳤다. 선봉 부대가 그를 참수하고 드디어 북을 울리며 진입하여 곧바로 창덕궁에 이르렀다.’라고 쓰여있다. 이후 창의문은 양란을 거치고, 영조 대에 이루러 개축되는 등의 변화를 거쳤다. 고요하던 자하문이 다시 소란스러워진 것은 해방 이후 1968년 1월 21일이다. 북한의 특수부대인 124 군부대 소속의 31명은 청와대 습격과 암살 명령을 받고, 휴전선을 넘어, 수도권까지 잠입했다. 그리고 마침내 세검정 고개의 자하문을 통과하려다 비상근무 중이던 경찰의 검문을 받고 그들의 정체가 드러났다. 검문 경찰들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단총을 난사하고, 그곳을 지나던 시내버스에도 수류탄을 던져 많은 시민이 살상당하기도 했다. 이후로 한국전쟁에 대한 공포가 전국을 강타했다. 자하문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폐쇄되었고, 청와대 보호를 명목으로 한 스카이웨이 건설로 경관이 크게 손상되기도 했다. 하지만 자하문 자체에 대해서는 지붕과 기와를 교체하는 등의 보수 공사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자하문이 다시 사람들을 맞이한 것은 1990년대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청와대 주변 지역이 개방된 시점부터였다. 1993년에 사적공원으로 조성되어 완전히 개방되었다. 그렇다면 현재의 자하문은 어떨까? 학교에서 자하문까지 가는 길, 여러 가지 중 하나를 소개해 보려고 한다. 우선 학교에서 언덕을 내려가 직진한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석파정 서울미술관이 보인다. 미술관을 지나 계속 걷다 보면 레이지버거클럽, 고블린 피자, 란저우육면, 부빙 등 유명 맛집이 등장한다. 식사 시간이라면 이곳 중 하나를 골라 식사하고 다시 길을 걸어보는 것도 권하고 싶다. 식사를 즐겁게 마치고 나왔다면 윤동주 문학관을 지나, 서울의 전경이 보이는 길을 따라 걷다 최규식 경관 동상이 보이는 길을 건너 안쪽으로 들어가면 자하문이 나온다. 위 사진들은 지난 6월 자하문을 방문하여 촬영한 사진이다. 1학기에 동기와 함께 길을 걸었을 때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리며 길을 걸었다. 길을 거닐며 첫 번째로 느낀 것은 ‘너무 습하고 덥고 힘들다!’ 였지만, 풍경은 아름다웠다. 초목이 우거져 초록빛이 가득했다. 여기가 정말 서울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자하문은 엄청나게 웅장하다거나, 주변의 건축물이 풍성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학교에서부터 자하문까지의 거리는 고요하고, 푸르고, 아름답다. 또 근처 청운공원에서 가벼운 소풍을 즐길 수도, 더 걸어 서촌을 찾을 수도 있다. 혼자 사색을 즐기며 걷기도 좋고,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걷기도 좋은 곳이다. 강의가 일찍 끝났거나 우주공강이 생긴 날에 한 번쯤 찾기 좋다. 자하문을 그저 학교 가는 길 지루한 길목 중 하나로 여기는 것보다 대학교 다닐 적 추억의 장소로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紫霞와 자하교지> 우리가 그저 스쳐 지나갔던 자하는 기나긴 시간부터,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까지 품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이 있어 받은 이름이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흐린 날 노을은 가려지고, 맑은 날 노을은 무엇보다 빛난다. 자하문은 풍수지리를 이유로 폐쇄되기도 하고, 역사를 바꾼 중요한 장소가 되기도 했으며, 다시 폐쇄되었다가, 현재는 또다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자하문은 역사 속에서 묵묵히 저의 자리를 지키며 가장 빛나고 사연 많은 성이 되었다. 숭례문 문루가 불타고 복원된 현재 자하문 문루는 한양도성 문루 중 가장 오래된 문루이다.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담긴 곳도 자하문이다. 하지만 고가도로의 건설 등으로 경관이 많이 훼손된 곳 또한 자하문이다. 과거 우리는 인간의 이익과 편의를 위해 개발에만 집중했지만, 현재는 공존을 가치로 두고 있다. 과거와 공존, 자연과 공존은 오랫동안 함께하기 위함이고 더욱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 필수적이다. 가장 오래되었고, 여러 이야기 담긴 자하문의 앞을 가로막은 고가도로를 정리하는 등의 노력이 있다면 우리는 더욱 아름답고 가치 있는 한양도성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자하문이 아름답기만 한 자줏빛 노을이 아니라, 해가 지며 모든 것에 스며드는 자줏빛 노을이라는 생각한다. 상명대학교의 ‘자하’ 교지편집부는 모든 것에 스며드는 자줏빛 노을답게 52년 전통을 이어가고 있으며, 사회와 학교 전반에 스며든 이야기를 풀어낸다. 사회로부터 소외된 소수자부터,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대학생들의 이야기까지. 앞으로 자하 교지편집부는 흐리고, 맑은 날을 가리지 않고 노을을 빛내며, 언제나처럼 저의 자리를 지키는 자하문처럼 제자리를 지키고 서서 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전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참고 문헌 ] 1. 서울 한양도성[웹사이트]. (2023.5.7). https://seoulcitywall.seoul.go.kr/content/8.do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웹사이트]. (2023.5.12).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7307 3. 한양도성박물관 (2015), 창의문과 사람들 : 2015년 한양도성박물관 상반기 기획전, 서울: 한양도성박물관
제 5 호 “도전! 상명대에서 천 원으로 아침밥을 먹어보다!”
수습기자 김나현 202210152@sangmyung.kr 대학생의 청년빈곤, 생계를 위한 결식 대학생은 미성년의 상태로 성년이 되었다는 점에서 불완전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학교에 입학한 새내기는 특히 돈을 벌 수 있는 수단과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이 경제적 문제를 겪곤 하는데, 이는 곧 청년 빈곤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는 경우라면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는 어른들의 말이 틀리지 않음을 몸소 느끼게 될 것이다. 2021년 동아일보와 잡코리아가 진행한 설문에서, 청년 빈곤을 겪는 대학생들은 대부분 재정이 부족할 때 가장 먼저 식비 지출을 줄이려고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를 고려해 보면 그들이 몇 번의 끼니를 거르거나 대충 때우게 되는 것은, 안타깝게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즉, 조금이라도 식비 지출을 줄여야 하는 빈곤 상황에 부닥친 청년들에게 잘 차려진 한 끼 식사는 그저 사치로 분류된다. 건강한 현대인의 생활을 위해 하루 식사는 아침, 점심, 저녁을 기준으로 세 번의 식사를 권장한다. 사정에 따라 비록 한 끼만 먹게 되더라도 영양소를 잘 챙겨 먹는 것이 필요하고, 특히 아침밥은 당일 에너지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필수적이지만,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동시에 경제적 빈곤을 겪는 대학생의 대부분이 지키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정작 청년들은 최소한의 아침밥조차 챙겨 먹기 힘든 현실에서 살고 있다. 청년 빈곤을 겪고 있는, 혹은 여러 사유로 인해 아침 식사 결식률이 높은 대학생에게 양질의 아침 식사를 천 원에 제공하여 젊은 층의 아침식사 습관화를 지원하자는 취지의 사업이 바로 ‘천원의 아침밥’ 이다. 상명대학교의 ‘천원의 아침밥’ ‘천원의 아침밥’ 사업은 대학교와 농림축산식품부 및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이하 ‘농림부’)이 공동 지원하여 대학생에게 쌀과 쌀 가공식품을 활용한 양질의 아침 식사를 제공해 쌀 소비를 확대하고 학생들의 식비 부담을 낮추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청년 빈곤으로 인한 아침밥 결식률 감소와 쌀 소비 촉진, 해당 두 가지의 긍정적인 의도로 시작한 천원의 아침밥 사업은, 농림축산식품부 주도로 진행한 만족도 조사 결과에서 전반적인 모든 항목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우리 학교 역시, ‘천원의 아침밥’ 시행 공지가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에브리타임’)에 게시된 후에 사업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이 주를 이뤘고, 해당 공지글에 이목이 집중되어 단시간에 ‘HOT 게시판’에 오르기도 했다. 이는 ‘천원의 아침밥’이 학생들의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어 경제적 곤란에 도움을 준다는 뜻에서, 본격적인 사업 시행 전임에도 ‘천원의 아침밥’에 대한 우리 학생들의 높은 관심도를 보여주었다. 상명대학교는 2023·1학기 5월 1일부터 ‘천원의 아침밥’을 시행했다. 상명대학교 ‘천원의 아침밥’은 본교에 재학 중인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매일 선착순 100명에 한하여 미래백년관 5층 학생식당에서 단돈 1,000원에 아침밥을 먹을 수 있도록 진행되었다. 업체 측의 인건비 절감과 동시에 한정된 예산 내에서 질 좋은 식사 제공을 위하여, 시행 요일은 일주일 중 평일에 해당하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인 4일로 한정했고, 시간은 8:30~11:00(소진 시까지), 10:00~11:00 총 두 타임으로 나눠 시간별로 메뉴를 달리 제공했다. 8시 30분부터 11시까지는 쌀 가공 빵과 우유, 후식으로 과일 푸딩을 제공했고, 10시부터 11시까지는 매일 달라지는 단품 메뉴와 2찬을 추가로 제공했다. 8시 30분부터 제공되는 빵식은 바쁜 아침에 학우들이 빠르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10시부터 제공되는 밥식은 이른 아침 수업을 마친, 혹은 오전 수업에 가기 전 배를 채우러 온 학우들에게 든든함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적절한 시간 분배와 메뉴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천 원으로 아침밥을 먹어보다!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사업 시행 기간에 여러 차례 방문하여 천원의 아침밥을 먹어봤다. 이하의 내용은 상명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서, 사업에 대한 나의 경험과 감상을 중심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1. 상명대학교 학생이 천원의 아침밥을 먹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교내 학생식당 내에 키오스크로 식권을 구매해야 한다. 단돈 1,000원으로 식권을 구매한 뒤 8시 30분부터 아침을 배식받는 시스템으로 진행됐다. 우리 학교에서는 1,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더하여 특별 식사비 지원 이벤트도 진행했는데, 이 이벤트의 이름이 바로 ‘상명이 쏜다’이다. <‘상명이 쏜다’ 홍보 이미지> ‘상명이 쏜다’란, 총장님을 비롯한 교무위원분들께서 매주 1회, 학생이 부담하는 1,000원을 지원하는 이벤트이다. ‘상명이 쏜다’는 천원의 아침밥 사업에 대한 인지도 상승을 통한 사업의 성공적인 운영 도모와 학생 복지 강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하여 학생들의 학교생활 만족도 제고를 위해 시행된 우리 학교의 특별한 이벤트였다. 사진 속에 기재된 날에 맞춰 가면 무료로 든든한 아침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해당 공지를 보고 나도 ‘상명이 쏜다’ 이벤트 날에 맞춰 간 경험이 있는데, 해당 일자에는 따로 식권을 구매하지 않고 무료로 아침밥을 먹을 수 있었으며, 식권 구매 대신 배식 받는 곳에 가서 날짜, 학번, 전공, 이름만 작성하면 됐다. 2. 키오스크로 식권을 받았다면, 사진 속 ‘오늘의 메뉴’가 적힌 곳 앞에 순서대로 줄을 서서 아침밥을 배식받으면 된다. 미래백년관 학생식당을 이용해 본 경험이 있다면 알겠지만, 저곳은 평소 점심 학식의 푸드코트 메뉴를 배식받는 곳이다. 파란색 가이드라인 안쪽으로 줄을 선 다음 수저를 챙기고, 식권을 내고, 배식을 받으면 된다. 천원의 아침밥 배식 요건이 학식을 먹을 때와 비슷하여 딱히 번거로움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 사업의 특징이자 장점이기도 하다. 3. 식권을 받고 순서가 다가오면 마침내 ‘천원의 아침밥’을 받아볼 수 있다. 앞서 서론에 언급했듯이, 우리 학교의 ‘천원의 아침밥’ 메뉴는 크게 빵과 밥, 두 가지이다. 8시 30분부터 소진 시까지 제공되는 빵식은 쌀 가공 빵과 우유, 후식으로 과일 푸딩까지 함께 나온다. ‘천원의 아침밥’ 사업 취지 중 하나인 쌀 소비량 확대를 위해 쌀로 가공한 빵으로 제공하는 것 같았다. 쌀 가공 빵은 쌀로 만든 슈크림 빵이었고, 쌀 슈크림은 생소하다는 생각에 걱정했는데 거부감 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슈크림 빵이었다. 쌀로 만들어졌다는 게 안 믿길 정도로 슈크림 맛과 비슷했는데, 오히려 기본 슈크림보다 쫀득한 느낌이라 더 맛있게 느껴졌다. 우유와 과일 푸딩은 특별한 점 없이 모두가 알 수 있는 맛이었다. 크기가 작은 빵이라서 아침으로 괜찮을지 걱정했는데, 빵만 주는 게 아니라 우유와 푸딩까지 함께라서 전체적인 양이나 만족도가 부족하지 않았다. 빵식의 세 가지 구성 모두 바로 먹어야 하는 게 아니라 가지고 이동할 수 있어서 수업 가기 전에, 혹은 수업 중간 쉬는 시간에 먹으면 배고픔이 가실 정도의 든든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서든 편리하고 간단하게 배를 채울 수 있다는 점에서 바쁜 아침에 최적이었다. 밥식은 10시부터 11시까지 제공되는데, 매일 단품 메뉴 하나와 2개의 반찬이 함께 나왔다. 내가 간 날의 단품 메뉴는 열무 비빔밥이었고, 추가로 배추김치와 으깬 두부 반찬이 나왔다. 단품 메뉴는 매일 메뉴가 달라졌고, 주간별로 나오는 학생식당 식단표로 메뉴를 확인할 수 있어서 원하는 메뉴가 나오는 날 골라갈 수 있다는 점과 매일 메뉴가 달라져 질리지 않는다는 점이 큰 특징이었다. 밥식의 메뉴는 단품 메뉴 하나를 메인으로 제공하되, 학생들의 선호도 반영되어야 하므로 제조 과정에 손이 덜 가면서도 추가적인 반찬이 필요하지 않은 덮밥, 비빔밥 종류로 준비하는 것 같았으며, 확실히 빵보다는 밥으로 아침을 먹었을 때 훨씬 든든한 포만감을 느꼈다. 내가 먹은 열무 비빔밥은 비빔밥을 안 좋아하는 나조차도 싹 비울 정도로 그 맛과 질이 좋아서 천 원이라는 강력한 가격적 메리트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둘 다 먹어보면서 빵과 밥, 무엇 하나가 더 좋고 나쁜 거 없이 각 메뉴의 확실한 특징과 메리트를 가지고 있었고 시간별로 나눠 제공함으로써 제한적인 상황에서도 선택지를 제공하고자 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여기까지가 천 원의 아침밥을 먹어본 나의 감상이다. 느낀 점을 되새겨보면서 ‘천원의 아침밥’을 경험한 다른 학우들은 메뉴 구성에 어떤 평을 내렸을지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기사를 마무리하며 사실 취재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나는 ‘천원의 아침밥’ 사업을 통한 혜택을 조금이라도 더 받고 싶어서 앞서 언급한 ‘상명이 쏜다’ 이벤트 진행 날을 골라서 방문했는데, 당연히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가 첫 방문 날 선착순 50명 안에 드는 것에 실패하기도 했다. 분명 9시 정각에 도착했는데도, 50개의 빵이 모두 소진되어 받을 수가 없었고 하필이면 이날 10시 수업이 있었던 터라 10시부터 제공하는 밥식도 받을 수가 없어서 수업 시간 내내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있었다는 눈물겨운 일화도 있다. 이런 경험을 통해 학우들이 식사비 지원 이벤트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 이런 이벤트를 잘 활용하려고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아침밥을 못 받은 것은 좀 더 일찍 도착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지만, 천원의 아침밥을 받기 위해 수업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도착했음에도 빈손으로 미백관을 나와서 강의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허탈함을 많이 느꼈다. 예상보다 일찍 음식이 소진된 경우에 이를 학생들에게 알리는 조치가 준비되어 있었다면, 나와 같은 학생들의 헛된 발걸음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시스템의 부족에 대한 아쉬움을 느꼈다. <분리수거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모습> 추가로 사업 시행 과정에서 아쉬운 점도 있었는데, 바로 쓰레기 분리수거 문제였다. 기분 좋게 맛있는 밥을 먹고 퇴식구에 갔더니 쓰레기통 한곳에 함께 버려진 플라스틱 용기와 비닐 쓰레기, 우유갑 무더기가 있었고, 나는 이런 상황에 조금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모두가 바쁜 아침이기 때문에 하나하나 깔끔한 분리수거는 힘들지 몰라도, 플라스틱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를 분류하는 기본적인 부분은 지켰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다음에 또 비슷한 사업을 하게 된다면, 이러한 부분도 고려하여 아쉬운 점이 없도록 발전해 나갔으면 좋겠다. 6월 21일을 마지막으로 상명대학교 첫 ‘천원의 아침밥’ 사업은 마무리됐지만, 대학생의 아침 결식률 감소와 쌀 소비 촉진을 목표로 한다는 좋은 취지의 사업이었던 만큼, 학생들의 반가운 참여를 전제로 하여 앞으로도 학우들에게 도움이 되는 새롭고 다양한 사업이 기획되길 바란다. [ 참고 문헌 ] 1. 사이드뷰, 아침밥의 효능 알고 계신가요? ‘천원의 아침밥’ 인기 급증, 2023.03.28,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5691877&memberNo=40708925&vType=VERTICAL 2. 학생복지팀, 천원의 아침밥 이벤트 "교무위원이 쏜다!!" 시행 안내, 상명대학교 공식 홈페이지 통합공지, 2023.05.04, https://www.smu.ac.kr/lounge/notice/notice.do?mode=view&articleNo=736263&srCampus=smu&article.offset=0&articleLimit=10 3. 학생복지팀, 2023년 ‘천원의 아침밥’ 사업 시행 안내(아침밥 식권 구매 당일만 사용 가능), 상명대학교 공식 홈페이지 통합공지, 2023.04.25, https://www.smu.ac.kr/lounge/notice/notice.do?mode=view&articleNo=736000&srCampus=smu&article.offset=0&articleLimit=10&srStartDt=2022-03-01&srSearchVal=%EC%B2%9C%EC%9B%90%EC%9D%98+%EC%95%84%EC%B9%A8%EB%B0%A5&srSearchKey=smu%2C&srEndDt=2024-02-29 4. 총학생회 선, 상명대학교 서울캠퍼스 천원의 아침밥 시행 관련 공지, 대학생 비공식 커뮤니티 공지, 2023.04.25, https://everytime.kr/370450/v/300448903 5. 주애진 기자 외 3명, 굶으며 버티는 청춘…청년 37% “돈 없어 끼니 거른 적 있어”, 동아일보, 2021.04.19,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10419/106471432/1
제 4 호 한국군이 진짜 베트남 민간인을 학살했나요?
한국군이 진짜 베트남 민간인을 학살했나요? 202010321@sangmyung.kr 편집장 주유라 네이버 지식인에 질문이 올라왔다. ‘한국군이 진짜 베트남 민간인을 학살했나요?’ 답변이 하나 달렸다. ‘아닙니다. 한국군 사령부는 강간이나 민간인 살해를 엄격히 금지했고 이를 위반할 경우는 매우 엄중한 처벌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답변에 6명의 사람이 눈에 하트가 달린 표정의 '좋아요'를 눌러 놓았다. 한국사 교과서에서 민간인 학살에 대한 설명을 한 줄만이라도 더했다면 이런 질문은 올라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민간인을 학살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사과는 하지 않아도 되겠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한 명이라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은 베트남 민간인을 학살했다. 교전 상황이 아닌 마을에서 무고한 노인, 여자, 어린이가 죽었다. 기어 다니는 채로 죽은 아기, 땅굴에 숨어 앉아있는 채로 죽은 엄마와 조카, 밥을 먹는 중에 밥그릇을 든 채로 죽은 아빠, 젖을 먹이다가 죽은 외조카. 마을 사람들의 가족이 죽고 마을은 폐허가 되었다. 한국 참전군에게 ‘민간인을 보호하라’라는 명령은 주어지지 않았다. 베트남의 마을 곳곳에는 증오비와 위령비가 세워졌다. “하늘까지 닿을 죄악, 만대가 기억하리라”는 문구가 적힌 한국군 증오비는 쭈옹딘 폭탄 구덩이 옆에 세워져 있다. 이 구덩이에서는 한국군 해병대가 민간인 36명을 몰아넣고 학살했다고 전해진다. 전쟁에 대한 기억은 국가마다 다르게 쓰이고 전승된다. 학살로부터 약 50년의 세월이 지난 2022년 현재, 우리는 민간인 학살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을까? 1960년에 발발한 베트남 전쟁은 1975년까지 이어진다. 한국은 1964년 베트남에 비전투 부대를 파견하고 1973년까지 군대를 파견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군은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하였다. 민간인 학살이 일어났던 지역에 남아있는 생존자들은 하나같이 이야기한다. 내 앞에서 내 부모가, 자식이, 형제가 죽었다고 말이다. 그들은 저마다 다른 그날의 기억을 꺼내어 막힘없이 이야기한다. 그들이 내뱉는 문장마다 진실이 서려 있다. 그들은 알고 있다. 어디서 몇 시에 어떤 사람들이 왔는지, 무엇으로 아이, 여자, 노인을 죽였는지를 보고 듣고 말했다. 한꺼번에 몇 명이 동시에 죽었는지를 기억하며, 자신은 살려달라고 싹싹 빌어서 살았다는 것을, 아무것도 모르고 기어 다니는 네 살짜리 아이는 총에 맞아 죽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진실은 언제나 스스로 자신의 존재 방식을 찾지요. 진실의 조각들은, 삶 속에, 사람 속에, 자연 속에 존재합니다. 이 편린들을 통해 진실은 드러나지요.’ 김현아,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 199쪽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은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되는 역사적 사실이다. 현지 피해 유족들의 조사에 따르면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80여 건이며 이 과정에서 9,000여 명에 이르는 베트남 민간인이 학살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베트남 전쟁 도중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 한국의 교과서는 정확한 서술을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는 미국으로부터 받은 경제적 지원과 박정희 정부의 경제 개발, 외화벌이, 한국 참전 군인의 고엽제 피해 등에 대해서는 대체로 빠짐없이 서술하고 있지만 민간인 학살에 대한 서술은 대체로 소극적이다. 2020년 출판된 미래엔 한국사(한철호 외)에서는 베트남 전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베트남 파병으로 국군의 전력이 증강되고, 건설업체의 해외 진출과 인력 수출 등이 활발해져 경제 성장을 위한 발판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전쟁에서 수많은 젊은이가 희생되었다. 또한 일부 한국군에 의해 많은 베트남 양민이 희생되기도 하였으며, 한국인 혼혈인(라이따이한)이 남겨졌다.” 이 서술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경제 성장과 한국 군인의 희생에 초점을 맞추고 이후에 덧붙이듯이 양민 희생을 간단히 서술하고 있다. 해냄에듀에서 2020년에 펴낸 고등학교 한국사에서는 그나마 2018년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 규명을 위한 시민 평화 법정’이 열린 사실에 관해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 발 나아갔다. 하지만 해냄에듀를 포함해 대부분의 교과서는 베트남 전쟁에서의 구체적인 민간인 참상의 정도나 수를 헤아리지는 않는다. 그러니 베트남 푹빈에서 1966년에 일어난 베트콩 소탕 작전인 ‘용안 작전’으로 인해 마을의 민간인이 몇 명 죽었는지는 알 길이 없는 것도 당연하다. 한국 교과서는 불도저 밀 듯 불을 지르고 총을 쏴댄 초토화 작전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군에 의해 발생한 여러 베트남 민간인 학살 중 하나인 용안 작전은 청룡여단 2대대, 3대대, 1대대가 투입된 민간인 마을 초토화 작전이다. 19일간 선띤현의 민간인을 ‘보이는 대로 다 갈겨버리는’ 작전이었다. 이 작전을 통해 한국군은 꽝응아이성 선띤현의 민간인을 학살하게 되는데, 그곳에는 주로 여자, 아이, 노인이 남아 있었다. 대체로 젊은 남자들은 군인으로 남과 북에 가 있었기 때문이다. 남은 사람들은 평화롭게 농사를 지으며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당연히 무장한 이도 없었고 누구도 한국군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이러한 과정을 ‘민간인 학살’이 아닌 전쟁 중의 피치 못할 ‘민간인 피해’로 명명하는 것이 타당할까? 조국을 위해 죽은 것이라고 볼 수도 없는 민간인의 유족에게는 베트남 정부의 보조금이 지원되지도 않았다. 베트남 정부로부터 보상금을 받는 사람들은 오직 전쟁과 관련하여 활동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베트남으로의 파병은 미국의 강요나 부탁에 의한 결정이 아니었다. 박정희는 미국에 먼저 파병을 제안하였다. 이승만 정부 때에도 이미 프랑스 군대가 인도차이나 공산군과 투쟁할 때 파병을 제의한 적이 있었다. 이를 이어 정당성 없이 군사쿠데타로 장악한 정권에 정통성을 갖기 위해 미국의 확고한 원조가 필요했던 박정희는 1961년 5.16 군사 정변 후 케네디와의 회담에서 베트남 참전을 제안하였지만 거절당하였다. 군권을 장악한 1961년 5월부터 합법적인 정부가 된 1963년 12월까지 정권에 대한 역쿠데타 시도는 계속되었고, 미국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경제 자금과 주한미군 원조 획득 등을 고려하여 박정희 정부는 베트남으로의 파병을 택한다. 파병 결정의 과정을 살펴볼 때 박정희 정부의 결정은 어쩔 수 없는 도움을 준 것이라기보다 적극적인 정치적 결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교과서의 서술과 사뭇 다른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2020년 출판된 미래엔 고등학교 한국사에는 다음과 같이 파병 과정을 서술한다. “베트남 전쟁이 확대되자 미국은 한국에 베트남 파병을 요청하였다. 박정희 정부는 6.25 전쟁을 도와준 나라에 보답하고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요청에 응하였다.” 이러한 짧은 서술 안에는 파병 결정의 과정이 생략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마치 박정희 정부가 요청을 수용한 듯한 뉘앙스가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2020년 출판된 금성출판사 고등학교 한국사에는 “박정희 정부는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베트남 전쟁에 국군을 파병하였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서술과 함께 경제성장을 강조하는 교과서의 서술은 베트남 민간인의 피해와 고통을 외면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교과서의 서술은 한국의 학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한국의 시선에서만 베트남 전쟁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이 과정에서 베트남 민간인의 피해는 희미해진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교과서 서술이 유지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2013년, 고교 한국사 교과서 검정 후 ‘민간인 학살’이라는 표현에 대해 보수 언론과 베트남 참전 전우회는 강력히 항의하였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표현에 대해 직권으로 수정을 요구하게 된다. 교학사를 제외한 모든 출판사의 집필자들은 정부의 수정 요구를 거부하지만, 이때 집필자와 출판사 사이 갈등이 생긴다. 출판사들이 집필자와의 상의도 없이 자체적으로 글을 수정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집필자들은 교육부와 집단 소송을 이어가게 된다. 이 과정을 거치며 교과서는 ‘학살’이라는 표현에 대해 직접적인 서술을 꺼리게 되었으며 내부의 검열을 거치게 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국과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 대해 상반된 태도를 보인다. 미군의 ‘밀라이 학살 사건’의 경우 사진기자와 통역사까지 대동하여 계획적인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진행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국은 끔찍한 학살이 일어난 손미마을 지역에 밀라이 박물관을 짓고 과거를 정확히 기억하고자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정권의 변화에 따라 과거에는 사과했다가도 이제 와서는 다시 책임을 부인하는 실정이다. 베트남에서 온 응우옌티탄과 응우옌 득 짜이는 지난 2020년 4월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였다. 응우옌티탄은 1968년 2월 12일 오전 한국군 청룡부대 군인의 민간인 학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이다. 이날 한국군은 퐁니 퐁넛 마을 주민들에게 “빵을 나눠줄테니 모여라”라고 했다. 74명의 민간인이 모였다. 그들 중 대부분은 부녀자와 어린이였다. 한국군은 이들을 줄 세워 총을 쏘았다. 응우옌티탄은 배에 총을 맞고 창자가 배 밖으로 튀어나온 상태로 기어다니다가 미군에 의해 구조되었다. 그녀는 가족 5명을 모두 잃고 고아가 되었다. 한국 정부는 베트남인 학살 의혹 국가배상소송 8차 변론기일에서 “피해 사실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라며 책임을 전면 부인하였다. 그러나 2023년 2월 7일, 국가배상 소송 1심에서 응우옌티탄이 승소하였다. 재판부는 ‘피고 대한민국’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이 사건으로 응우옌티탄의 부모와 언니, 남동생 등은 현장에서 사망하고 오빠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이는 명백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라고 판시했다. 응우옌티탄은 “학살 사건으로 희생된 영혼들이 저와 함께하며 응원해준 것이라 생각한다. 영혼들도 이제 안도할 수 있을 것이고, 위로가 될 것 같아 무척 기쁘다”라고 말했다. 응우옌티탄의 승소는 그녀가 진상규명을 요구한지 11년이 지나서야 이루어졌다. 이번 판결은 개별적인 군인이 아닌 한국군 집단이 일으킨 민간인 학살을 법원이 인정한 첫 번째 사례가 되었다. 현재 국회에서는 2020년 4월에 발의된 ‘베트남전쟁 시기 대한민국 군대에 의한 민간인 피해사건 조사에 관한 특별법’이 여전히 계류 중이다.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책임 회피를 멈추고 역사를 직시하는 것이다. 베트남에 병원이나 학교를 지을 것이 아니라 위령비를 함께 짓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일이다. 교과서를 개정하고 역사를 제대로 교육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한 개인이 내리는 판단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짧은 기사 한 줄, 주변 사람의 말 몇 마디, 대중매체에 나오는 몇 분짜리 영상과 교과서 한 문단이 쌓이고 쌓이는 것이다. 그 작은 것들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익숙하고 당연하게 알고 있던 정보에 의문을 품을 때 비로소 커다란 폭력과 억압이 보일 것이다. 참고문헌 박중현. (2020). 한국 역사 교과서 속의 베트남 서술 분석. 역사교육 연구, 38, 395-438. 김현아,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 책갈피, 2002 김다연. (2022.08.13). "한국군 민간인 학살" 베트남인 증언…. 판결 영향 줄까, YTN, https://www.ytn.co.kr/_ln/0103_202208130533442829 정재호. (2022.10.07). [단독] '베트남인 학살 배상 소송 저지 방안' 은밀히 알아본 한국 정부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00515060004628?did=NA 김남기. (2022.10.08). 한국군 민간인 학살 숨기려는 정부... 과오를 지우려는가,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70594&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오효정. (2023.02.07).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 피해, 정부가 배상해야"…첫 판결,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38925#home 정희상. (2023.03.01). 한국의 첫 인정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은 명백한 불법”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9666 메인사진 _ 1971년 파월 한국군 맹호부대 환송식 현장 Ⓒ 경향신문사
제 4 호 혹시 분데스리가…아세요?
혹시 분데스리가…아세요? 202110483@sangmyung.kr 정기자 양현준 “손흥민이 혼자서 경기를 끝내러 달려갑니다. 손흥민! 대한민국이 2대0으로 앞서갑니다. 손흥민이 오프사이드였는지에 대한 VAR 판독이 이루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별 상관없습니다. 독일이 월드컵에서 탈락합니다. 톡 차넣으면서, 비록 대한민국은 16강 명단에 적히지 못하게 됐지만, 대신 역사책에 적히게 되었습니다. 독일을 조별리그에서 떨어뜨린 최초의 팀으로 말입니다.” -BBC 스포츠 해설가 조나단 마크 피어스(Jonathan Mark Pearce)- 카잔의 기적. 대한민국이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H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 독일을 2대0으로 이긴 경기를 흔히 지칭하는 말이다. 이 경기승리 시 때에 따라서는 16강 진출이 가능했기에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며, 전 국민이 이 경기를 숨죽여 보았고, 결국 전 국민을 열광시키는 결과가 나왔다. 비록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독일은 이 경기 패배로 첫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오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또한, 외국 베팅업체인 스포츠베팅다임닷컴은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직후, 역대 월드컵 최대 이변 TOP 5를 소개하였는데 대한민국과 독일의 경기가 TOP 3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독일은 FIFA 월드컵 우승 횟수 2위,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우승 횟수 1위를 차지하는 등 국제무대에서 굵직한 성과를 내고 있었다. 독일은 축구를 빼놓고 논할 수 없을 정도로 축구에 진심인 나라이다. 그에 걸맞게 자국 리그인 분데스리가 역시 유럽 프로축구 5대 리그 중 하나에 들 만큼 전 세계적으로 많은 인기와 명성을 지니고 있다. BUNDESLIGA 분데스리가 분데스리가는 독일의 최상위 프로축구 리그이다. 분데스리가라는 말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스포츠 리그를 일컫기 때문에 핸드볼, 야구, 배구, 농구, 하키, 럭비 등에도 분데스리가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분데스리가 하면 독일의 프로축구 리그를 많이 떠올린다. 분데스리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비교적 친숙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 이유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많은 선수가 분데스리가에서 뛰었다. 차범근, 손흥민, 차두리, 구자철 등 정말 많은 선수가 분데스리가를 경험했다. 우리나라의 선수들이 타 유럽 리그에 비해 독일 분데스리가 진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분데스리가의 특징에 있다. 우선, 분데스리가는 외국인 등록 규정이 없다시피 할 정도로 느슨하다. 분데스리가의 선수등록 규정은 독일에서 21세 이전 3년간 훈련 받은 선수가 최소 12명이 필요하다. 이를 홈그로운 제도라고 한다. 같은 홈그로운 제도를 두고 있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잉글랜드 혹은 웨일스에서 21세 전에 3년간 훈련 받은 선수가 최소 8명이 필요하다. 여기까지 살펴보았을 때는 분데스리가가 규정이 더 빡빡하지 않냐는 의구심이 들 수 있다. 그러나 분데스리가 선수단 등록은 제한이 없는 반면,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는 선수단 등록 가능 선수가 최대 25명으로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타 리그 대비 다양한 선수를 영입하는데 거리낌이 덜하다. 나머지 하나는 우리나라 선수들이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해 좋은 활약을 하였다는 점이다.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와 ‘바이어 04 레버쿠젠’을 UEFA컵 우승(현 UEFA 유로파리그)을 주축으로 이끈 차범근, ‘함부르크 SV’와 ‘바이어 레버쿠젠'에서 눈부신 활약을 한 손흥민, ‘VfL 볼프스부르크'와 ‘FSV 마인츠 05’ 그리고 ‘FC 아우크스부르크'까지 선수 생활 대부분을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뛴 구자철까지 많은 우리나라 축구선수의 좋은 활약으로 좋은 선례를 남김과 더불어 카잔의 기적 등 독일인들의 이목을 끌었다는 점이 이적시장마다 우리나라 축구선수들의 분데스리가 이적설이 계속되는 이유이다. 양날의 검, 분데스리가의 50+1 제도 아랍에미리트 국부 자본이 투입된 이후,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단일 시즌 역대 최다 승점 100점 우승에 빛나는 ‘맨체스터 시티FC’. 브라질의 네이마르(Neymar da Silva Santos Júnior), 프랑스의 킬리안 음바페(Kylian Sanmi Mbappe Lottin)를 각각 2,987억 원, 1,947억 원을 지불하여 데려와 역대 이적료 1위와 2위를 갈아치우며 어마어마한 카타르 자본을 과시한 ‘파리 생제르맹 FC’. 대부분의 축구 리그, 그중 최상위 수준의 축구 리그들은 구단주의 자본을 기반으로 팀을 이끌어나가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시민구단 형태로 팀을 이끌어가는 경우도 존재한다. 시민구단이란 특정한 기업이나 개인이 소유하는 것이 아닌 연고지 기반으로 시민들을 통해 자금을 운용하여 구단을 운영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분데스리가에는 50+1이라는 다른 리그에는 없는 제도가 존재한다. 50+1 제도란 비상업적 비영리 단체가 51% 이상의 구단 지분을 보유해야 하는 제도이다. 쉽게 말하자면 구단 자체나 구단 팬들이 구단 지분의 51% 이상을 차지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1963년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에 기업 출자로 설립된 ‘바이어 04 레버쿠젠’과 ‘VfL 볼프스부르크’ 그리고 20년간 꾸준히 특정 자본의 지원을 받은 ‘TSG 1899 호펜하임’을 제외하고는 모두 시민구단의 형태를 띠고 있다. 구단 자체나 구단 팬들이 구단 지분의 51% 이상을 차지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우선 근본적으로 자국 리그가 상업적인 측면보다는 자국 축구 팬들을 위한 축구로 유지하려는 정책이다. 개인이든 법인이든 최대 소유할 수 있는 지분이 50%가 되지 않기에 시민들이 구단주가 구단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렇기에 비리가 적고 재정이 비교적 투명하고 건전하다. 대표적인 사례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꼽을 수 있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는 특정 거대 자본의 손길을 거부하고 다양한 스폰서 유치를 통해 구단 재정을 충당하고 있다. 또한 주요 선수를 비싼 값으로 처분함과 동시에 그 빈자리를 대체할 선수 영입에 큰돈을 쏟아붓지 않고 스카우트 시스템으로 싼값에 데려오는 좋은 영입을 여럿 성사하는 기조를 띄고 있다. 가장 중요한 성적까지 뒷받침되며 구단의 명성이 유지되고 있다. 부채보다 순이익이 훨씬 많은 흑자 경영을 지속하는 중이라, 유럽 전체를 놓고 봐도 올바른 구단 운영모델로 손꼽힌다. 축구를 금전적인 이득만을 얻으려는 수단으로 삼지 않기에 구단 자체가 축구와 그 팬들로 이루어진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러한 점이 무수한 자본이 투입되는 다른 리그와 다르게 돈에 지배당하지 않는다는 자부심마저 엿볼 수 있어서 정말 매력적인 리그라는 생각이 많이 드는 부분이다. 그러나 장점이 명확하게 존재한다면 단점 역시 눈에 띄게 존재한다. 바로 리그의 수준 하락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12/13 시즌부터 21/22 시즌까지 무려 10년 연속으로 ‘FC 바이에른 뮌헨’이 리그 우승을 차지했을 만큼 압도적인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상 ‘FC 바이에른 뮌헨’을 견제할 수 있는 팀은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또한 상위권 순위 역시 굳어지어 가고 있다. ‘FC 바이에른 뮌헨’은 곧 리그 우승이라는 인식이 만들어지면서 리그 우승을 원하는 좋은 선수들은 ‘FC 바이에른 뮌헨’ 외의 다른 분데스리가 팀의 이적 제의를 선뜻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유망주, 라이벌 팀의 주축 선수 등이 ‘FC 바이에른 뮌헨’으로 가거나 다른 리그로 가는 모습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다. 물론 다른 구단들이 재정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점도 한몫한다. 이러한 상황은 생각보다 치명적이다. 기존에 좋은 활약을 하던 선수의 대체자를 제대로 구하지 못하면 성적 하락은 자연스레 따라오는데, 성적이 좋지 않은 팀에 많은 스폰서를 유치하긴 힘들다. 점점 악순환에 빠져드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어쩌면 당연하게도 독일 구단들은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FC 바이에른 뮌헨’을 제외하고는 좋은 성적을 거의 거두지 못한다. 이를 해결할 방안은 앞서 언급한 ‘맨체스터 시티 FC’, ‘파리 생제르맹 FC’와 같이 해외의 거대 자본이 들어와 과감한 투자로 팀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이 최선이다. 현시점에서는 과거와 달리 점점 자본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자본, 즉, 돈이 몰리는 곳에 선수들이 몰리고, 선수들이 몰리는 곳에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리그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중위권의 팀도 타 유럽 5대 리그의 주요 클럽만큼이나 돈을 지출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이제는 어쩌면 단순히 구단이 키워내는 유망주에만 팀의 명운을 걸기엔 기약 없는 기다림이 아닐까? 그렇다면 50+1 제도는 폐지돼야 할까? 50+1 제도를 반대하는 입장은 대부분 글로벌 팬인 경우가 많다. 현지 팬들은 찬성하는 입장이 강하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할까. 분데스리가는 50+1 제도 덕분에 시민들이 직접 나서서 경기장 입장티켓 가격 방어가 잘 되어가고 있다. 많은 자본이 몰리고 있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와 비교하면 정말 큰 가격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차이에서 TV로 보는 글로벌 팬과 의견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분데스리가의 평균 관중 수는 4만 5천 명으로 전 세계 스포츠를 다 합치더라도 NFL에 이어 2번째 높은 수치이다. 하부 리그 경기도 많은 관중 동원력을 보이는 것은 돈으로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거대 자본의 투입이 항상 성공의 길만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의 ‘파르마 칼초 1913’의 경우 지 잠피에트로 마넨티에게 구단을 판매하였는데 알고 보니 돈세탁과 횡령을 목적을 인수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로 인해 4부 리그로 강등당한 사례도 있다. 또한,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여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구단 상품 및 티켓, 이적과 재계약 금지 조치가 취해지면서 어려움에 빠진 사례도 있다. 이외에도 재판매를 목적으로 구단을 인수하고 구단을 어려움에 빠지게 만든 사례 역시 꽤 존재한다. 구단과 선수 그리고 팬 구단과 선수 그리고 팬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팬이 없다면 스포츠 경기는 그저 공놀이에 불가하다. 이는 아무런 경제적 가치가 없음을 의미한다. 그만큼 스포츠에 있어 팬은 절대적이라고 생각한다. 50+1 제도만큼 팬들에게 힘을 실어 줄 만한 제도는 없다. 독일은 상위리그, 하위 리그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저 내가 태어난 곳, 아니면 의미가 있었던 축구팀을 응원하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축구로 연대감을 느끼며, 축구를 가장 재밌게 즐기는 민족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50+1 제도는 수년이 지나도 독일 분데스리가만이 가진 특별한 제도로 남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무수한 자본이 쏟아지는 현재 흐름과는 반대로 가는 제도이기 때문에 굳이 새롭게 채택 할 이유는 없다. 흐름에 맞지 않는 제도이기에 독일 분데스리가 발전에 있어 큰 장애물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필자는 구단과 팬 사이 단단한 연대감을 가진 독일 분데스리가의 팬들은 자본으로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어쩌면 앞서 언급한 50+1 제도의 단점을 보완하여 결속된다면 수십년이 지난 후엔 독일 분데스리가가 각광받을지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참고문헌> 김현민(2022), 분데스리가에만 있는 규정 50+1, 의미와 미래, 스포츠LAB, 2022. 03. 25., https://contents.premium.naver.com/sclass/slab/contents/220325230032094Lf PREPO football, [한글자막] 한국 vs 독일 레전드 경기! BBC 영국 현지 해설 반응, 2018. 09. 20., https://www.youtube.com/watch?v=yDkat1AEaec 메인사진 _ 분데스리가 로고 _ https://www.bundesliga.com/de/bundesli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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