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41 호 고통 없는 죽음에 관하여
고통 없는 죽음에 관하여
버튼 하나로 고통 없이 죽음에 이르는 ‘사르코(Sarco)’. 일명 ‘안락사 캡슐’이 지난, 9월 스위스에서 처음 사용됐다. 사르코(Sarco)는 캡슐 내 산소를 질소로 바꿔 저산소증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기계다. 보라색 캡슐에 들어가 뚜껑을 닫으면,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버튼을 누르면 어떻게 되는지 등에 질문을 받는다. 답변을 마친 뒤, 버튼을 누르면 산소량이 급감하고 약 5분간 무의식 상태가 유지되다가 사망에 이른다. 산소를 대체할 질소 비용, 18스위스프랑(약 2만 8천 원)만 내면 된다.
스위스는 연명 치료 중단을 의미하는 존엄사는 물론, 불치병 환자에게 약물을 투입해 사망에 이르게 하는 의사 조력 자살(안락사)을 1942년부터 허용했다. 다만 사르코(Sarco)는 50세 이상이 정신건강 진단서만 있으면, 사용 신청이 가능해 스위스의 조력 자살 제도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스위스 정부도 “사르코의 사용은 비합법적”이라며 사르코 허용에 반대했다. 결국, 이 캡슐은 현재 사용이 중단된 상태다.
▲사르코(Sarco) (사진:sbs뉴스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7729461)
안락사, 평온한 죽음을 선택할 권리
안락사(euthanasia)는 그리스어 ‘euthanatos’가 기원이다. eu는 ‘좋은’, ‘평온한’, ‘행복한’을 뜻하는 접두어고, thanatos는 죽음의 신을 말하는 합성어다. 즉, 고통이 없는 편안한 죽음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안락사는 “회복될 수 없거나, 불치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를 구제하기 위해 환자의 죽음을 유발하거나, 허용하는 관행이나 행위”를 말한다. 처음에는 ‘자비로운 죽음(mercy-killing)’의 의미로 쓰이다가 최근에는 ‘품위를 유지한 채로의 죽음(dying with dignity)’이라는 존엄사의 의미로도 쓰인다.
네덜란드는 2002년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했다. 뇌·심장 계통의 불치병 환자 중에 신체적 고통이나 정신적 고통 면에서 견디기 힘든 환자에게 안락사를 허용한다. 네덜란드에서는 한 해에 8천여 명, 전체 사망의 약 5%가 안락사를 선택하고 있다. 최근에는 유럽 국가들도 잇따라 안락사 합법화를 논의하고 있다. 가톨릭 보수주의 성향이 강한 유럽 국가들은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것을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대한 논의가 깊게 진행되면서 안락사를 허용하는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현재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페인, 오스트리아 등이 안락사를 합법화하였다.
안락사를 지지하는 입장은 개인의 자율성과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자율성과 자기 결정권은 인간 삶의 목적이 행복이듯이 행복추구권에서 자기 결정권을 도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이 자신의 삶에 중대한 사항을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에 행동할 수 있는 권리”가 자율성과 자기 결정권이다. 따라서, 자신의 생명을 종결하는 행위도 자기 결정권에 의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25년이면 우리나라도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전체 인구 대비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20%를 넘어서면 초고령사회로 정의한다. 사회가 변하면서 죽음에 대한 인식도 변하고 있다. ‘웰-다잉(Well-dying)’ 개념이 퍼지고 있다. 웰-다잉이란 ‘죽음을 앞둔 사람이 인간다운 품위를 지키며,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죽음에 관한 사항을 스스로 결정하고 사전에 준비한다는 개념이다. 죽음을 전제하므로 보다 전향적인 죽을 권리에 대한 입장을 제시할 수 있다. 실제로 65세 이상 고령 인구 현황에 대한 통계를 확인해 보면 죽음에 대한 인식 변화가 보인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3년도 노인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 중 84.1%가 연명 치료를 반대했다. 또, ‘좋은 죽음’에 대하여 ‘임종 전후 상황을 스스로 정리하고 맞이하는 죽음’, ‘신체적・정신적 고통이 없는 죽음’, ‘가족이나 지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죽음’ 등의 순서로 답했다.
▲고령 인구 현황표 (사진:https://kosis.kr/visual/populationKorea/PopulationDashBoardMain.do)
안락사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논쟁
헌법 10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명시되어 있다. 안락사를 반대하는 이들은 인간은 존엄하며, 삶의 모든 순간에도 존엄성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명권은 인간 존엄성의 근원이며, 이는 불가침 사항이다. 개인이 자기 생명의 주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생명을 임의로 해치거나 처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안락사는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행위이기에, 허락될 수 없다고 본다.
지난 10년 이상 동안 대한민국의 자살률은 OECD 가입국 중 1위이다. 특히 노인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이것은 자기 죽음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이 우리 사회 안에 퍼져가고 있는 단면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안락사가 허용된다면, 자살률이 비약적으로 오를 우려도 있다. 또한 다른 방식의 악용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안락사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과거 조상들은 오래 사는 것을 축복으로 여겼다. 마을의 환갑을 맞이한 노인이 있으면, 잔치를 열어 기념하곤 했다. 오늘날, 의료기술로 생명이 연장되고 삶의 질이 향상되어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은 조성되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라는 지적이 따른다. 전체 인구 대비 노인 인구의 비율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안락사 논쟁이 수면 위로 올라온 지금, 우리나라도 논의를 계속해야 한다.
전통적인 윤리관은 안락사를 고려하고, 선택하는 이들을 비난한다. 하지만, 경직된 윤리적 신념이 극심한 고통으로 죽어가는 이들을 더욱 고통 속에 던지는 행위일 수도 있다. 오히려 안락사 논쟁이 비인간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임종 앞에서 고통받고,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진정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율성을 지키는 것인지 성찰해보고, 존엄한 죽음에 대한 선택과 결단을 존중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인 논의가 필요할 때이다.
신범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