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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707 호 [책으로 세상읽기] 홀대받던 감정들을 위하여 “칵테일, 러브, 좀비”

  • 작성일 2022-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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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4529
김지현

[책으로 세상읽기] 홀대받던 감정들을 위하여 “칵테일, 러브, 좀비”


▲ 조예은 / 안전가옥 / 2020년 4월 13일


  우리는 소외되고 있는 감정을 인식하고 있을까? 결정적인 실수를 했을 땐 자책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고의성이 없기에 억울함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성공적인 프로젝트를 마친 뒤에는 시원하면서도 오랜 기간 준비한 것이 한순간에 사라졌으므로 허무한 감정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저자 조예은은 이렇게 내면에서 무시당하고 있는 감정들에 집중한 단편들을 모았다.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작은 감정의 존재를 밝히게 되었다.


  단편집은 총 4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17년째 목에 걸린 가시, 남자 친구의 홀대로 늘 어딘가에 얽매인 채원이 의문의 여성 태주로부터 해방감을 얻게 되는 ‘초대’, 늘 하천에 혼자 있었던 물귀신 ‘물’에 무서운 존재였던 ‘숲’. 숲과 물의 만남을 방해하는 사건으로 위기를 겪지만 결국 두 존재가 하나가 되는 사랑 이야기 ‘슾지의 사랑’, 좀비가 된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며 불안정한 삶을 사는 주연과 엄마의 이야기인 ‘칵테일, 러브, 좀비’, 아버지로부터 죽은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타임 루프 하는 아들의 이야기인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


  모든 이야기는 ‘나’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싸움이다. 마음속에 숨겨두었던 깊은 감정이 폭발하여 사건을 일으키기도 하며 각자 다른 방법으로 싸운다. 


  등장인물들은 사건이 끝난 후 각각 해방감, 허무함 등으로 다르게 감정을 느끼며 인물들이 하는 행위가 꼭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음을 깨닫게 된다.


  <칵테일 러브 좀비>의 ‘모든 증오의 밑바닥에 깔린 건 애정이었다.’라는 문장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칵테일, 러브, 좀비 주인공인 주연은 가부장적인 아버지를 미워하기도 했으나 그가 고생해서 벌어온 돈으로 생활할 수 있기에 사랑했다. 자신을 함부로 대함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 함께 사는 엄마를 한심하다고 여겼지만 엄마를 사랑했다. 주연은 이때 증오의 밑바닥에 깔린 것은 애정이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부모님을 증오했고, 미워했던 적이 수도 없이 있었지만 결국 종국엔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장은 책을 소개하는 문구가 될 수도 있다. 저자 조예은의 등장인물들은 결국 사랑을 위해 부도덕한 행위를 저지른다. <초대>의 채원은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습지의 사랑>은 ‘숲’과 ‘물’의 사랑을 위해, <칵테일, 러브 좀비>는 아빠를 사랑하는 엄마를 위해,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는 엄마를 사랑하는 나를 위해. 이는 늘 뒷전이었던 등장인물들의 뒤죽박죽 한 감정에서 폭발한 애정이었다. 모든 등장인물은 누군가를 증오했으나 결국 행위가 애정이 기반이 되었으므로 나는 이 문장이 가장 인상 깊다.


  이 책은 스릴러적인 요소를 담고 있으므로 어딘가 무섭고 소름 끼친다고 느낄 수 있다. 나는 이 점이 바로 책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미디어에서 노출되는 사랑은 남녀 주인공이 사랑에 빠져 연애에서 결혼으로 발전한다. 사랑이 영원하다고 생각하며 두 주인공이 모두 행복하게 끝맺음하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그렇기에 누구나 한 번쯤 로망을 가질 만큼 달콤하고 로맨틱하다. 그러나 책의 사랑은 다른 형태이다. 사랑하지만 미워하는 감정의 양면성, 사랑으로 인해 저지른 행위가 좋지 않은 결과물을 가져와 느끼는 허무함 등 다양한 형태가 나타난다. 그로 인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다운 장면만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한다.


  단편이지만 큰 울림을 주고 있는 책. 짧지만 감명 깊은 이야기를 원하는 사람, 소설의 몰입도가 좋음으로 소설 입문자, 스릴러를 좋아하여 어딘가 오싹한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강민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