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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705 호 [영화로 세상보기] 영화와 인문학

  • 작성일 2022-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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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3635
김지현

[영화로 세상보기] 영화와 인문학 


만약 당신이 평행우주를 여행할 수 있다면 무엇을 가장 먼저 하고 싶나?

만약 당신이 잔인한 현실과 풍요로운 가상 현실을 골라야 한다면 무엇을 고를 것인가?

만약 당신이 노력해도 빠져나올 수 없는 공간에 갇혔다. 이때 누군가를 죽이면 빠져나갈 수도 있다고 한다. 당신의 선택은?

당신의 일상은 망가졌다. 

신적인 존재가 나타나 대신 지금까지 봤던 소설, 드라마, 영화, 게임 등의 매체 속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면, 어디로 들어갈 것인가?



멀티버스와 차원이동

  최근 개봉한 닥터스트레인지 2에선 멀티버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멀티버스란 다중우주론이라고도 하며 통상적으로 시간과 공간에서 갈래가 나뉘어, 서로 다른 일이 일어나는 여러 개의 다중 우주(multiverse)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무한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가설이다. 


  멀티버스가 마블스튜디오로 인해 떠오르긴 했지만 사실 대체 우주, 평행 우주 등이 그 전부터 존재했었고 우리도 그런 이야기에 매우 익숙하다. 이야기 진행에 좀 더 쉬운 장치를 만들어주고 어쩌면, 덕후들에겐 ‘가슴이 웅장해지는’ 상황을 연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만약 평행우주나 멀티버스 속의 당신을 만난다면 어떨까? 같은 취향, 성향을 가진 자기 자신과 신나게 놀 수도 있고, 상황이 무섭거나 혐오감을 느껴 자리를 피할 수도 있다. 아니면 알바 대타나 이중 약속이 가능하도록 이용할 수도 있고, 반대로 내가 이용당할 수도 있다. 또, 당신이 멀티버스나 혹은 평생세계를 이동할 수 있다고 하면 어느 곳, 어느 시간대에 가겠는가? 닥터스트레인지 2편의 등장인물들처럼 일어날지도 모르는 다른 가능성을 찾기 위해 이용할 것인가 아니면 잃었던 존재를 다시 찾기 위해 이용할 것인가? 나라면 과제와 수업을 피해 놀이공원에 사람이 없는 평행세계로 갈 것이다. 당신은 어떠한가?


가상 현실과 진짜 현실

  현실과 가상(다른 세계)에 관한 이야기에서 메트릭스(1999)를 빼놓을 수 없다. 워낙 유명한 영화라 다들 이름은 들어봤겠지만, 내용에 대해 간단히 말하자면 매우 먼 미래, 인공 두뇌를 가진 컴퓨터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인간들은 태어나자마자 그들이 만들어낸 인공 자궁 안에 갇혀 AI의 생명 연장을 위한 에너지로 사용된다. AI에 의해 뇌세포에 매트릭스라는 프로그램을 입력 당한 인간들은 매트릭스의 프로그램에 따라 평생 1999년의 가상 현실을 살아간다. 프로그램 안에 있는 동안 인간의 뇌는 AI의 철저한 통제를 받는다. 인간이 보고 느끼는 것들은 항상 그들의 검색 엔진에 노출되어 있고, 인간의 기억 또한 그들에 의해 입력되고 삭제된다.


  사이버펑크의 대표격이자 ‘빨간약, 파란약’의 관용구가 처음 나온 곳이다. 만약 당신이라면 빨간약을 먹고 진실을 찾을 것인가 아니면 파란약을 먹고 가상세계에서 영원히 2022년을 반복할 것인가? 매트릭스의 주인공도 빨간약을 먹고 정신을 차리자마자 죽을 위기에 여러번 놓인 것을 보면 쉽게 세상의 진실을 아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이 세상이 가짜인 것을 모른채 인형처럼 살아가는 것이 옳을까? 



가능성과 탈출, 그리고 딜레마

  또 다른 가상 세계이자 끊임없는 선택을 내려야 하는 영화로는 ‘큐브2 (CUBE 2: HYPERCUBE)’가 있다. 등장인물들은 일정 시간 지체하게 되면 함정이 발동되는 하얀 방에 갇히게 된다. 처음에는 이곳의 존재가 ‘하이퍼 큐브’임을 알고 다 같이 모여 함정을 피해 다니며 탈출 가능성과 출구를 찾지만 계속 반복하는 함정으로 피로와 허기에 지치게 된다. 여러 초현실적인 현상들이 끊임없이 나오며 때론 신비하게, 때론 잔인하게 죽거나 사라지는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에서도 양자역학과 평행 우주가 삽입되어있다. 조금 더 공포물에 가까운 SF 장르로써 생각해볼 거리가 영화 전반에 나온다. 


  만약 당신이라면 한정된 공간에서 시간, 공간, 인물까지 반복되는 방에 갇히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만약 당신이 사람을 죽여야 나갈 수 있는 확률이 생길 수도 안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이라면 자신의 목숨이 걸린 가능성을 위해 살인을 할 수 있는가? 


영화의 인문학적 영향

  영화의 특성상 극단적이고 몰아붙이는 상황이 많이 나온다. 평행 우주나 가상세계에 갇히는 것만큼 독특하고 현실 가능성이 떨어지는 일은 없지만, 과학으로 위장한 판타지는 여전히 매력적인 요소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부분에 대해 생각하고 언급할수록 더 내용이 풍부해지고 설정이 짜임새 있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 스스로 질문하고 상상하는 것이 시간적으로 힘들다면 한 편의 영화로 사고하는 토대를 빠르게 쌓는 것도 방법이다. 바쁜 현대인의 오락이자 일상에서 벗어난 고민을 할 기회를 주는 영화는 책 대신 등장한 새로운 사고의 도구이다. 영화는 내용에 따라 철학적이기까지 하며 토론의 장이 되어 인문학의 영역에 가까워졌다. 우리는 모두 자기 인생의 감독이자 배우이다. 매일 끊임없는 선택을 하고, 미래를 위한 설계를 한다. 영화관에서 팝콘을 먹으며 배를 채우고 오는 것도 좋지만 감독의 의도, 배우의 캐릭터 이해, 관객의 반응 등을 살피는 것도 꽤 재밌는 일이다. 최근 영화관 내에서 식품 섭취가 가능하고 점차 개봉되는 영화도 늘어났다.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다시 돌아오는 영화를 각자 최고의 방식으로 즐겼으면 좋겠다. 



김다엘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