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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698 호 [뮤지컬로 세상 읽기] 2021년의 엑스칼리버, 변화가 필요한 이유

  • 작성일 202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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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5651
윤소영

2021년의 엑스칼리버변화가 필요한 이유

뮤지컬 <엑스칼리버>를 보고


▲ 뮤지컬 <엑스칼리버> (출처: EMK)


  6세기 영국은 영토가 분열되어 내전이 빈번했다주위 어디를 둘러봐도 피비린내로 가득한 암흑의 시대였다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민족인 색슨족의 침략마저 예언됐으나폭군 우더 펜드라곤은 엑스칼리버의 힘을 앞세워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바쁘다드루이드교의 마법사이자 예언가인 멀린은 엑스칼리버를 수단으로 삼는 우더 펜드라곤을 죽이고혼란으로 가득 찬 영국을 구할 새로운 왕 아더를 진정한 왕이 될 수 있도록 오래된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영국을 구할 자만이 엑스칼리버를 뽑으리라.


  바위산엑스칼리버검을 뽑는 자 왕이 되어 세상을 구하리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키워드들이다뮤지컬 <엑스칼리버>아서 왕 전설을 각색한 국내 창작 뮤지컬이기 때문이다대형 뮤지컬 제작사 EMK의 두 번째 창작 뮤지컬로 공연 전부터 관심을 끌었던 <엑스칼리버>는 막상 막이 오르자 반응이 갈렸다웅장한 넘버와 거대한 바위섬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액션쟁쟁한 배우 라인업까지 <엑스칼리버>EMK의 체면을 세워주기에 충분했다그러나 아쉬움이 남는 것은 스토리였다. 2019년 초연에서 가장 많이 지적을 받았던 것이 바로 극의 스토리였고, 2021년 재연에서 많은 부분이 보완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엑스칼리버>의 문제는 전설의 각색에 있다전설은 옛날부터 민간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의미하는데, ‘세계가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화민담과 구분된다세계의 우위라는 것은 다시 말하면전설 속 주인공은 그가 살아가는 세계에 의해서 결국 패배를 맞이하게 된다는 뜻이다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낙랑공주와 호동왕자’ 이야기 역시 대표적인 전설이다고대 사람들에게 전설은 오랜 시간 민간에서 인기를 끌며 향유되었겠지만시간이 흐르며 전설은 설득력을 잃어버리고 만다사실 생각해보면인간이 언제나 세계에게 패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우리 인간은 세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장애물에 치여 상처받기도 하고 고통스러워하기도 하지만언제나 모두가 포기해버리는 것은 아니다물론 세계와의 대결에서 패배하고 좌절하기도 하지만다시 일어나 세계와 맞서 싸우며 승리를 쟁취하기도 한다이러한 인간의 삶의 모습을 포착하지 못한 전설은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나며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렇다면 <엑스칼리버>는 전설을 각색함에 있어서 21세기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찾았어야 한다이를 테면 누구나 잘 아는 왕으로서 아서의 이야기가 아니라왕이 되는 과정에서 상처받고 외로워질 수밖에 없었던 인간으로서 아서의 이야기에 집중했어야 한다아버지마을 사람들과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이 세상의 전부였던 아더는 자신의 탄생과 관련된 비밀에 혼란스러워 하지만 이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 땅 카멜롯을 지키기 위해 왕의 자리에 오른다왕관을 쓴 자그 무게를 견뎌라왕의 자리에 오른 아더는 카멜롯은 지켰지만제 곁에 있던 사람은 그 누구도 지키지 못했다사람을 사랑했던 아더에게 남은 것은 결국 엑스칼리버뿐이었다세상의 전부였던 아버지가 실은 내 아버지가 아니라니내가 사실은 폭군의 아들이며그마저도 흑마법으로 인해 태어난 사생아라니세상에 하나밖에 남지 않은 피붙이가 나를 저주한다니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모두 나를 떠나버렸다니


  극의 초반여리고 순수했던 아더는 시련을 겪으며 방황하기도 하지만 수많은 갈등과 고난을 차근차근 이겨내며 진정한 왕으로 성장한다그러나 뮤지컬 <엑스칼리버>는 주인공 아더의 이런 복잡한 내면과 심리를 심도 있게 다루지 못했다아더가 검을 뽑고 갖은 시련을 이겨내며 영국을 구하는 왕이 되는 장면만 나열하는 것은 아더가 주인공인 게임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아더는 그 과정에서 포기하고 싶었을 것이며외면하고 이기적으로 굴어버리고 싶었을 것이다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을 저주했을 것이고원한 적 없었던 자신의 운명을 원망했을 것이다사무치는 외로움에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난 과거를 추억했을 것이고알 수 없는 미래를 두려워하며 눈물 흘리는 밤도 있었을 것이다넘버를 통해 아더의 인간적인 내면이 조금씩 노래되기는 했으나 다소 직관적이고 유치하게 느껴지는 가사는 설득력이 부족했다결국 아더의 감정은 오로지 배우들의 표정과 말투를 통해 전달됐다스토리의 부족한 점을 배우의 역량을 메꾸는 일이 돼버린 것이다오히려 감정의 흐름이 명확했던 모르가나가 대중에게 더 설득력 있게 다가왔고, EMK가 뮤지컬 제목을 <킹 아더>가 아닌 <엑스칼리버>로 정한 것은 모르가나에 대한 마지막 양심이라는 조롱도 피할 수 없었다


  시대착오적인 장면이 여전하다는 것 또한 아쉬운 점이다아서 왕 전설이 고대 영국에서 시작된 것임을 고려하면시대착오적인 장면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실제로 아서 왕 전설을 찾아보면 극에 비해 더 잔인하고혐오적인 요소들이 많다그러나 세심한 고려의 부족으로 극 중에서 모순되고 충돌되는 지점이 있다는 것이 아쉽다. <엑스칼리버>기네비어를 그저 왕의 아내가 아닌 카멜롯의 기사라 칭한다. <엑스칼리버>가 기네비어를 여성임에도 스스로 맞서 싸우며 자신의 뜻을 펼치는 지혜로운 인물로 설정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요소가 극중에서 확인되는 것은 분명한데동시에 기네비어의 의지적 모습을 적극적으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한계도 함께 확인된다흑화한 아더의 곁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기도만 하는 모습아더와의 결혼 이전에는 자유롭고 편한 복장이었던 기네비어가 결혼 후에는 드레스만 입고 조신하게 행동하는 모습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엑스칼리버>는 기네비어의 주체성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그녀를 기사라 칭하면서도 원탁의 기사에 포함시키지 않는 장면 역시 아쉽다그러나 수도원을 가게 되는 초연의 결말과 달리 아더를 지키기 위한 군사를 훈련시키러 떠나는 재연의 결말은 확실히 <엑스칼리버>가 이런 점들을 고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원작이 있는 작품의 요소들을 완전히 바꾸어버리는 것이 망설여질 수 있지만사실 그럴 수 없다면 21세기 작품으로서 <엑스칼리버>의 가치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재연에 이은 삼연그리고 그 이상이 기대되는 작품인 만큼앞으로 부족한 부분이 보완될 가능성도 크다개인적으로는 <엑스칼리버>를 보고 온 이후로 아더가 겪었을 인간적인 고뇌와 외로움을 계속 곱씹어보았더니 아더에게 마음이 많이 쓰이고 애정 또한 크다삼연에서 더 입체적인 인물로 다시 태어날 아더를고개를 갸웃하지 않아도 되는 극의 설정들을 기대해본다


윤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