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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678 호 [영화로 세상 읽기] 우리 지금 상황이 재난 그 자체라도

  • 작성일 2019-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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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4233
송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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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시트 

감독: 이상근


우리 지금 상황이 재난 그 자체라도


 우리 사회에는 언젠가부터 ‘웃프다’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어떤 특정한 상황이 웃기고도 슬프다, 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이 신조어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감정 중에서도 가장 중심에 있는 감정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요새는 입시가 하늘의 별 따기라더라, 그러고 나서도 취업이 그렇게 또 어렵다더라, 그 와중에 경기도 좋지 않아서 다들 힘들다더라, 하는 사회에 대한 암울한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에도 격렬하게 화를 내기보다는 스스로를 희화화하는 편을 택하며 버틴다. 대부분의 우리는 말 그대로 웃기고도 슬픈 인생을 살고 있다.


 영화 <엑시트>는 이런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웃기고도 슬픈 인생들을 아예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던져버린다. 집안의 골칫거리이자 고민거리인 취업준비생 ‘용남’과 아르바이트생과 비슷한 처지의 연회장 직원이 된 용남의 동아리 후배 ‘의주’를 비롯한 사람들은 정말 갑자기, 의문의 가스폭발 사고로 인한 재난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높은 곳으로 올라가 헬기의 구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가스는 바닥에서부터 차오르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 못하면 고통스럽게 죽는다. 살아남고 싶다면 가스가 차오르는 속도보다 빠르게 뛰어야한다. 영화 속 이야기의 흐름을 위해 인공적으로 설계한 구조일 뿐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절묘한 상황이다. 다시 말해서 이 영화의 설정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웃픈’ 한국 사회에 대한 일종의 메타포를 담고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무한경쟁사회에서 끊임없이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마치 ‘용남’과 ‘의주’처럼 말이다. 목숨을 걸고 건물 벽을 오르는 이질적인 모습에 어쩐지 몰입을 하고 공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떤 의미로든 달리는 행위는 스스로의 힘 말고는 믿을 수 있는 것이 없기에, 지켜보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응원뿐이라는 것마저도 현실과 닮아있다. 재미있는 점은 우리는 언제나 달려가지만, 우리가 다가가고자 하는 목표가 항상 우리의 출구가 되어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애초에 상황의출구라는 것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유와 은유가 가득한 이 영화의 제목이 ‘엑시트’라는 것은 제일 먼저발견할 수 있는 가장 큰 아이러니인 셈이다.

 

 결국 영화는 우리에게 ‘불안하더라도 계속 달리자’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메시지가 주변 어른들의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거야.’라는 덕담과는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역시 이마저도 웃픈 우리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에게 정말로 ‘좋은’ 날이 오는지는 듣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막막한 상황 속에서 서로에게 보내는 격려는 웃프면서도 힘이 된다. 어쨌든, 다 같이 좀 더 달려보자. 어느 건물의 옥상까지든, 도시 한 가운데에 우뚝 선 타워크레인까지든. 달리다보면 언젠가는 출구가 보일 테니까.


전혜연 (한국언어문화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