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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744 호 [교수사설]과거와 역사에서 배우는 지혜

  • 작성일 2025-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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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25498
신범상

  지난해를 돌아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경사스러운 일이 무엇이었느냐고 묻는다면, 단연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노벨상이 발표되는 10월만 되면 “과연 우리도 수상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와 아쉬움을 되풀이해 왔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은 그러한 갈증을 단번에 해소해 주었다.


  이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를 배출한 나라가 된 우리는 영화·음악·드라마 등으로 대표되는 K컬처가 그저 서구문화의 모방이나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오랜 역사와 문화적 역량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사실을 전 세계에 다시금 확인시키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보면 한국은 대륙과 섬의 중간에 자리한 반도 국가이자, 강대국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수많은 외세의 침략과 식민 지배, 그리고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천 년의 역사를 유지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


  바로 이 땅의 ‘서사’에 담긴 사람들의 삶과 정신력이다. 한강 작가가 빚어낸 ‘문학’은 이러한 역사의 상흔과 극복 과정을 섬세하게 담아내고 있다. 우리가 언어와 인종이 다른 세계 여러 민족과 깊이 대화하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밑바탕은 정치나 경제가 아니라 바로 이러한 ‘서사’, 즉 문학·드라마·영화가 전하는 이야기라는 점을 떠올려 보자. 그리고 한국이라는 공간에서 만들어진 서사는 그 어느 한 장면도 이 땅을 살았던 사람들의 과거를 외면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난날의 고난과 아픔을 마주함으로써 현재를 견디고 미래를 그려내는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을 들어 보면, 작가는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는 단지 문학에만 국한되는 물음이 아니다. 생각해 보자. 나의 과거는 나의 현재를 돕고 있는가. 혹은 우리 대학의 과거는 현재를 어떻게 이끌고 있는가. 과거와 역사는 화석처럼 굳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디딤돌이자 미래를 위한 도약의 에너지가 될 수 있다. 문제는 그 과거를 우리가 어떻게 마주하고, 어떻게 재해석하느냐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캠퍼스를 거니는 학생들과 학교 구성원 모두 각자 자신의 ‘과거’를 짊어지고 있다. 그걸 다른 말로 자신의 ‘역사’라고도 부른다. 역사가 현재를 돕고 미래로 나아가게 하려면 끊임없는 성찰과 탐구, 그에 따른 변화가 뒤따라야만 한다. 대학은 바로 그 탐구의 장이 되어야 하고, 학생들은 대학이 제공하는 지식과 환경 위에서 자신의 과거와 대화하며 미래를 열어 갈 준비를 해야 한다.


  특히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기술문명 시대에는 인간이 가진 고유한 경험과 서사를 어떻게 살려낼 것인가가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바로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과거와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대학은 학생들이 과거로부터 배운 통찰을 발판 삼아 미래를 창조할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과거가 현재를 돕는 일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학문을 탐구하고, 역사를 새롭게 조명하며, 이를 토대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봄, 새 학기를 시작하는 모두가 과거를 ‘짐’이 아닌 ‘자산’으로 삼아 한 걸음 더 미래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돕고 있는 과거의 힘이며, 우리가 앞으로도 지켜나가야 할 중요한 가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