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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740 호 상대적인 시간의 기억

  • 작성일 2024-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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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1975
김현지

상대적인 시간의 기억



  많은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시간은 공평하게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하루는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식사를 하고, 공부를 하거나 수업을 듣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일상이거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거나 여행을 다닌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시계 속의 시침과 분침이 알려주고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아닌 상대적인 시간을 보낸다.


  어린 아이들은 잠시만 가만히 있어도 심심하고 지루함을 느낀다.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은 지루함을 견디다 부모의 10분이 10시간으로 느껴져 칭얼대다가 혼이 난다. 나이가 들수록 모든 감각이 느려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노화 현상의 일종이다. 노화로 인한 세대별 감각의 차이는 아이와 대학생에게서도 발생한다. 느려진 감각(오감)은 순간의 기억을 희미하게 만든다. 마치 분당 60프레임으로 영화를 찍다가 20프레임으로 영화를 찍는 것과 같다. 더욱이 이러한 프레임을 저장할 수 있는 용량도 기억력의 퇴화로 점점 줄어들게 된다. 절대적인 시간 속에 개개인은 각각 상대적인 시간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의 신경세포에서 분비되는 도파민은 기억, 행복, 의욕 등에 관여한다. 행복과 의욕의 감정으로 분비된 도파민은 당시의 기억을 오래 남길 수 있다. 그러나 과도한 도파민은 기억력과 집중력을 감소시킨다. 일상적으로 항상 해오는 일이나 습관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하지만, 특별하게 계획한 여행, 합격 소식, 기대하지 못했던 즐거운 경험, 어려운 일과 공부를 밤새 해낸 경험은 기억에 오래 남는다. 행복과 의욕에 관련된 기억들이 생생하게 오랜 남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원치 않은 기억이지만 슬픈 경험과 불행한 경험도 오래 남는다. 어렸을 때 스타워즈와 인디아나 죤스를 보았던 경험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 이유는 전에 본 적이 없는 멋지고 다양한 특수효과들이 그 영화를 생생하게 기억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비슷한 영화를 보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것은 영화를 보면서 도파민이 많이 나왔다가, 그 이후의 비슷한 영화에서는 무감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PC나 핸드폰 게임, 그리고 넷플릭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즐거움을 느끼지만 기억에 남지 않는 것을 많은 사람이 경험한다. 이는 순간의 과도한 도파민이 현재 즐거움을 줄 수 있지만, 기억 속에 남지 않고, 이미 있는 기억조차 지워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과도한 도파민은 더욱 많은 양의 도파민이 있어야 만족감을 느끼게 한다. 예전에는 행복과 즐거움으로 느꼈던 기억이 과도한 도파민으로 인해 둔감해지고 사라질 수 있다. 짧은 쾌락을 위한 활동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경우 결국 기억의 프레임 하나하나가 빛바랜 사진처럼 희미해져 가는 것이다.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 나온 유명 일타강사는 “최선을 다해 어떤 것을 열심히 하면 DNA가 기억한다“는 얘기를 했다. 공부든 일이든 항상 열심히 한다면 당장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해도 그러한 습관이 몸에 배어 후에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열심히 공부하거나 일한 기억들은 몸의 DNA뿐만 아니라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어려워 포기하기 쉬운 공부나 일을 밤을 새우며 끝내고,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바라봤던 기억은 희미할 수 있지만, 떠올릴 때마다 기분 좋은 느낌이 생기며 의욕을 높일 수 있는 기억이 된다. 


  사람들은 기억을 저장해둘 프레임이 빛바래고 급속히 줄어들고 있음을 느끼면서, 남보다 더 긴 상대적인 시간을 갖고 싶어 한다. 그것은 나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며 다른 기억들을 만들고 있는 매 순간의 절대적인 시간 속에, 즐겁고, 뿌듯하며, 의욕적인 기억을 많이 저장한 긴 상대적인 시간이다.

어떠한 기억을 만들며 상대적인 시간을 늘릴 것인가? 시간은 상대적이어서 같은 시간도 누군가에게는 길고, 누군가에게는 짧다. 대학에 와서 만들고 싶었던 좋은 기억 중 DNA에 흔적을 남길 정도로 열심히 무언가를 한 기억들, 여행이나 친구들과 어울렸던 즐겁고 행복한 기억 같은 상대적인 시간의 기억을 늘릴 때가 바로 지금이다. 



고영건 교수 (화공신소재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