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40 호 한강, "문제의식의 깊이와 미적형식의 아름다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한 단상
상명대 학보사의 한강 관련 원고청탁이, 한국 최초일 뿐만 아니라 아시아 최초로 여성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문학사적 사건에 따른 것인지라 이와 관련된 여담으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아울러 한강의 소설들을 십수 년 전부터 주목하던 오래된 애독자 가운데 한 사람이자, 『소년이 온다』에 대해서 미진한 능력이나마 공을 들인 논문 한 편도 발표한 적이 있는 연구자로서, 짧고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쓴다는 핑계로 사적인 소회도 다소간 피력하고자 한다. 사실 한국의 문학 평론가나 문학 전공 교수들 혹은 출판계 종사자들 사이에서, 한강이 언젠가는 노벨문학상을 받을 것이라는 말들이 오고 간 지는 꽤 되었다. 2007년에 출간된 『채식주의자』가 2015년 영어 번역본으로 출간되자마자 2016년 맨부커상을 수상하면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게 된 시점은, 사실 또 다른 맥락을 이미 내포하고 있었다.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2016년보다 2년 전인 2014년에, 한국 평단의 큰 주목을 받은 『소년이 온다』가 이미 한국어로 발간되었다. 평자들 각자의 관점과 감수성에 따라 갈릴 수는 있겠으나, 적지 않은 평자들이 『소년이 온다』를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결정적인 사건을 정면으로 끌어안은 한강 소설 세계의 또 다른 분기점이자 확장 지점이라고 평가하였다. 한강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한 심사위원들 가운데 한 명인 안나 카린 팜은, 한강의 작품들 가운데 어떤 작품을 가장 먼저 추천하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별 망설임 없이 『소년이 온다』를 꼽기도 하였다. 2014년의 『소년이 온다』에 이어, 한강이 맨부커상 최종 수상자로 결정된 2016년 5월에, 작가 스스로가 자신의 소설 세계에 대한 ‘작가의 말’과도 같다고 한, 작품의 구성과 전개 방식으로 볼 때 한강의 가장 ‘시적인 소설’ 혹은 ‘시적 산문’에 해당하는, 간결하고도 아름답게 정제된 작품 『흰』이 발간되었다. 따라서 『채식주의자』의 맨부커상 수상이, 또 다른 번역을 기다리고 있는 이미 출간된 한국어 작품들의 높은 수준 (주제 의식의 깊이와 치열함, 정련된 문체, 서사적 구성의 독창성과 밀도 등으로 판단할 수 있는)으로 미루어 볼 때 국제적인 파장의 시작점일 뿐이리라는 점을, 어느 정도 눈썰미가 있는 전문가나 독자들은 예상할 수 있었다. 2017년 『소년이 온다』가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채식주의자』는 맨부커상에 이어 2018년 스페인 산클레멘테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2017년 『희랍어 시간』이 프랑스 메디치 외국 문학상 최종후보에, 2018년 『흰』이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에 다시 한번 올랐다.
2021년 출간되어 평단과 독자로부터 재차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작별하지 않는다』는, 1948년 제주 4‧3사건에서 한국전쟁기 보도연맹 사건으로 이어지는 해방 직후의 극단적인 이념 대립과 내전 상황에서, 국가에 의해 자행된 대규모 양민학살 사건들을 세 여성 인물을 중심으로 소설화하였다. 『소년이 온다』 이후 7년 만에 출간된 『작별하지 않는다』는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시간대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이를 통해 한강의 작품 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의식, 즉 인간과 사회의 폭력성과 치유 가능성, 나아가 폭력성의 극복 가능성에 대한 질문은, 더욱 선명하게 정치적이고 역사적으로 확대되고 있었다. 이 소설이 직시하는 역사적 기억의 일차적 주체는, 1948년 제주 4‧3 사건에 연루되어 수감 되었다가, 한국전쟁의 개시와 함께 최대 수십만 명으로 추정되는 보도 연맹원 대량 학살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남편의 진실을 필사적으로 추적하는 인선의 어머니이다, 동시에 어머니가 남긴 자료들을 바탕으로 어머니의 평생의 투쟁을 이어가는, 4‧3의 진실을 예술적 형식으로 각인시키고자 하는 딸 인선이 있다, 그리고 인선과 인선의 어머니의 역사이자 한국 현대사의 참상에 한발 한발 온몸을 밀어 넣기 시작하는 인선의 친구 경하가 있다, 반세기가 훨씬 넘는 시간대를 가로지르는 역사적 기억을, 인선의 제주도 집에 남겨진 앵무새 아마의 생명을 살리려는 경하의 여정을 매개로, 풍요로운 시적 상상력과 은유 및 이에 연동된 특수한 서사적 리듬으로 소설화한 『작별하지 않는다』는, 2023년 프랑스 메디치 외국어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유럽을 기준으로 할 때 얼추 두 세기 반 이전에 본격화된 근대 소설의 전개 과정을 되짚어 보면, 역사에 남을 작품성과 세계적인 문학상의 수상 사이에는 필연적인 인과관계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가령 20세기 초에 인간과 사회에 대한 가장 깊이 있는 문제의식 혹은 문학적 혁신성을 보여 준 작가들로 평가되는 마르셀 프루스트, 제임스 조이스, 레프 톨스토이 등은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강의 몇몇 소설들이 각종 문학상의 최종후보로 올라가고 연이어 수상까지 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드는 생각은, 한마디로 당연하다는 것이었다. 필자가 그나마 잘 알고 있는 프랑스 문학계의 최근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2014년의 파트릭 모디아노(Patrick Modiano), 2022년의 아니 에르노(Annie Ernaux)를 예로 들면, 이들의 작품에 견주어 한강의 작품들이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는 않다는 농담 섞인 확신을 지인들과의 사석에서, 혹은 수업 시간에 우연히 학생들에게 피력한 적이 있다, ‘일단 한강한테 먼저 줘야 되는거 아냐? 끗발 있는 나라 작가들이라고 노벨문학상 너무 쉽게 받는 거 아냐?’라는 식으로… 농담이었지만 전적으로 농담만은 아닌 것도 사실이었다. 1901년 제1회 노벨문학상이 프랑스 작가 쉴리 프뤼돔(Sully Prudhomme)에게 부여된 이래, 한강을 포함하여 2024년까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총 121명의 작가 가운데 91명이 유럽 작가이다. 성별로 구분하면 지금까지 여성 수상자는 18명에 불과하다. 지금까지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들 가운데는 심지어 더 이상 문학사에서 거의 거론되지 않는 작가들도 일부 있는데, 이들은 예외 없이 유럽 출신 남성 작가들이다. 그런데 한강이 언젠가 노벨문학상을 받을 것이고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 사람 가운데 하나였지만, 이렇게 빠르리라고는 당연히 예상할 수 없었다. 만 54세라는 이른 나이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노벨문학상의 편향성 시비 때문에라도 이번에는 아시아 출신 여성 작가의 수상이 점쳐지기도 하였지만,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현재까지의 노벨문학상 운영 관행에 비추어 볼 때 모든 면에서 기분 좋은 예외적 사건이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로 언론에서 많이 회자 된 노벨 위원회 위원장 안데르스 올슨의 발표문 가운데 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서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치열한 시적 산문(for her intense poetic prose that confronts historical traumas and exposes the fragility of human life).” 한강의 작품 세계에 대한 설득력 있는 요약이라고 생각된다. 주제의 측면에서 한강 작품의 근본적인 특징은, 광주민주화운동, 제주 4‧3 사건, 보도연맹 사건 등 한국사의 결정적인 비극적 사건의 소설화에 있어서, 이미 『채식주의자』가 그러하듯이 인간성 혹은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보편적인 질문을 동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소년이 온다』에서, 계엄군에게 죽임을 당할 것을 알면서도 항쟁 마지막 날까지 전남도청을 사수하다가 체포되어 수감 된 교육대학 복학생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노벨상 위원장도 언급한, 그러나 그 이전에 이미 한국의 많은 평론가들과 연구자들이 언급한 한강의 시적 산문과 이에 연동된 이탤릭체 표기는, 위와 같은 강렬한 근본적 질문이 정점을 향해 고양될 때, 단순한 문체상의 스타일이 아니라 감정과 감수성의 충만한 밀도로서 제시된다. 즉 한강 작품 세계의 또 다른 일면인 예술성에 대한 탐구는, 작품이 거듭될수록 작가의 주제의식과 밀접하게 일체를 이루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적 문체의 정련된 감각적 밀도를 매개로, 한강의 소설은 인간과의, 인간의 역사에 대한 기억과의 작별을 거부하는, 어떤 아슬아슬하고도 절실한 인간과 세계에 대한 긍정으로 나아간다. 상명대학교의 학생들이 한강의 한국 사회와 역사에 대한, 나아가 인간 자체와 세계에 대한 고통스러운, 그러나 크고도 깊은 연대 의식을 공유할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노벨문학상 선정위원회의 여러 동료 작가들과 평론가들이,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한강을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한강의 작품들이 제시하는 문제의식의 깊이와 미적 형식의 아름다움이, 지금 세상에 너무도 보편적으로 절실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의진 교수 (프랑스어권지역학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