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36 호 [교수사설] 디지털 인공지능 시대와 인문학적 자질
디지털 인공지능 시대와 인문학적 자질
오늘날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은 보편적인 사회적 환경이다. 이미 인터넷과 개인용 컴퓨터가 상용화된 상황에서, 유튜브가 2005년에, 세계 최초의 스마트폰인 애플의 아이폰이 2007년에 등장하여 빠른 속도로 대중화되었다. 절대다수의 상명대 학생들에게 컴퓨터, 노트북, 스마트폰 등은 어릴 적부터 친숙한 디지털 기기들일 것이고, 유튜브는 다양한 지식과 문화콘텐츠의 공급원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한국은 네이버와 다음으로 대표되는 자국어 포털 사이트, 그리고 카카오톡이라는 국민적 소셜미디어가 일찍이 자리 잡은 나라이기도 하다. 한국과 같은 IT 선진국에서, 디지털 기술은 사회적 환경을 넘어 거의 ‘제2의 자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최근 수년 사이 본격적으로 전 지구적인 사회적 의제가 된 인공지능 기술은, 이미 사물 인터넷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전자제품을 통하여 일상 속으로 들어와 있으며, 쳇 지피티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인식과 사고방식 자체를 전반적으로 재규정할 수도 있는 수준에 도달하였다. 인공지능 기술의 고도화로 인하여, 어쩌면 디지털 기술이 인간의 사회활동을 보조하는 도구를 넘어, 인간을 ‘대신하여’ 사고하고 활동하는 상황까지 갈 수도 있으리라는 전망이 우세해지고 있다. 인공지능이 가장 손쉽게 대치할 수 있는 직업군 등에 대한 언론보도나 전문가의 의견이 일상적으로 큰 사회적 관심을 유발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급속한 사회적 변화는, 그 자체로 불가역적인 현실일 것이다. 따라서 우선 상명대 학생들이 자신의 전공이나 개인적 관심사를 관련된 디지털 기술과 연계하여 사고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학교 차원에서도 이러한 기술적 변화와 연동된 사회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끊임없이 개발하여 제시하고 있으니, 학생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런데 다른 한 편, 아직은 현실이 아니라 가능성의 영역인 새로운 인공지능 시대에 대해 많은 사람이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두려움은 누구보다도 딥러닝과 인공지능의 창시자와 개발자들 및 관련 업계의 중요 인물들이 표명한 것이기도 하다. 딥러닝과 인공지능 기술의 대부라고 불리는 제프리 힌턴이 자신이 발전시킨 기술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작년 5월에 구글을 퇴사하였다. 이보다 앞선 2023년 3월 22일, 미국의 비영리단체 ‘생명의 미래 연구소’는 ‘거대 인공지능 실험 일시 중지 공개서한’을 발표하였다.
AI 연구소들이 더욱 강력한 디지털 두뇌를 개발하고 활용하는 경쟁에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갇혀있고, 아무도–심지어 이를 발명한 사람들조차–이를 이해하거나, 예측하거나, 안정적으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최근 몇 달 동안 목도하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수준(=충분한 재원을 동원한 실질적인 예방적 관리 수준)의 계획과 관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 우리는 이 기계들이 허위선전과 거짓 정보로 우리의 정보 채널을 뒤덮어 버리도록 허용할 것인가? 우리는 모든 일, 심지어 우리에게 성취감을 주는 일까지도 자동화하기를 원하는가? 우리는 종국에는 우리보다 수적으로 우세하고 더 영리해서, 우리를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고 우리를 대체할 수도 있는 인공지능을 개발해야 하는가? 우리는 인류 문명에 대한 통제권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가? 이러한 결정을 민주적으로 선출되지 않은 기술 업계의 리더들에게 위임해서는 안 된다.
위의 서한에 일차로 서명한 1279명의 명단에는 인공지능 연구의 최고 권위자들뿐만 아니라 인문학계의 관련 학자들, 오픈 에이아이(Open AI)의 공동 창립자이기도 한 일론 머스크, 애플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 등의 기업인들도 있다. 그런데 이 서한은 거대 인공지능의 발전이 그 자체로는 필연적이며, 신중하게 사용하면 인간에게 큰 이익과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사실상 전제하고 있기도 하다. 거대 인공지능과 관련한 논쟁은 너무나도 거대하고 복잡한 주제라서, 이 칼럼을 쓰는 나 자신도 사실은 지극히 피상적인 지식만 있을 뿐이다. 게다가 프랑스 문화예술 전공자로서, 수학적이고 공학적인 이해는 사실상 전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조하고 싶은 바는, 인공지능의 발전이 모든 인간에게 예외 없이 엄청난 가능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제시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 문제를 사고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일은 전공과 무관하다는 점이다. 가령 이 문제에 대한 가장 앞선 총체적 비전과 비판적 상상력을 제시한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사이버 펑크 SF 장르의 토대가 된 소설 『뉴로맨서』를 1984년에 출간한 작가 윌리엄 깁슨이 있다. 깁슨은 이 소설에서 사이버스페이스, 매트릭스, 네트워크 형 거대 인공지능 등의 개념과 상상력을 최초로 제시하였다. 1984년은 이제 막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최초의 매킨토시 모델을 출시한 해였다. 따라서 깁슨이 『뉴로맨서』를 쓰면서 아직 어떤 개인용 컴퓨터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결론적으로 상명대 학생들이 한 인간이자 민주주의 사회의 일원으로서,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이 이미 야기하고 있고 앞으로도 야기할 수 있는 문제들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이는 단순히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다. 인공지능의 시대에, 인공지능을 어떤 관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인공지능의 발전과 더불어 큰 사회경제적 의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이 사회의 전 부문에 관련된 기술인만큼, 다양한 영역에서 문제의 해결과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활동, 디지털 기술을 또 다른 새로운 방향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창조적 시도들이, 경제적 차원과 연동되어 다양한 직업 또한 만들어 낼 것이다. 인공지능을 직접적으로 프로그래밍하는 일을 하게 될 이공계 학생들도, 자신이 하는 일의 총체적인 인간적 의미를 더 폭넓고 깊이 있게 이해할 때, 사회적으로 더 바람직하고 필요한 인공지능의 활용 방안을 제시하는 일에 참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디지털 기술 혹은 이에 대한 깊은 이해에 더해, 인문학적 사고 능력과 상상력을 고루 갖춘 뛰어난 상명의 인재들이 전공을 막론하고 배출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