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메뉴
닫기
검색
 

학술상

[평론 가작] 황금은 색이 바래지 않는다

  • 작성일 2022-12-14
  • 좋아요 Like 0
  • 조회수 3924
김지현

황금은 색이 바래지 않는다.

 

  당신은 쇼팽의 음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클래식을 별로 들어보지 않아서 쇼팽이 무슨 곡을 썼는지, 그 곡들이 어떤 멜로디를 갖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지만, 쇼팽이 쓴 곡들을 들어보면 아, 이 곡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클래식 음악이 그렇듯이 안 들어봤을 수 없을 정도로 유명하니까 말이다. 이번 글에서 다룰 영화 피아니스트에서는 주로 쇼팽의 곡이 나오는데, 쇼팽의 곡을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낭만이다. 쇼팽의 발라드, 야상곡. 그것들은 언제 들어도 마음을 두둥실 떠오르게 해주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곡들이다. 


  하지만, 그런 쇼팽의 곡이 자주 등장하는 이 영화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어둡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폴란드의 피아니스트 브와디스와프 슈필만이 겪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보여주는데, 그 이야기들은 참으로 암울한 비극이다. 


  영화는 슈필만이 라디오에서 라이브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쇼팽의 야상곡을 아름답게 연주하고 있는 녹음실에 어울리지 않는 굉음이 들리고, 라디오 녹음실의 창문이 부서진다. 집으로 대피한 슈필만이 본 것은 영국이 독일에 선전포고하는 뉴스였다. 그 이후로 폴란드를 점령한 독일이 유대인 탄압을 시작한다. 유대인인 슈필만은 그 탄압을 피해 이곳저곳으로 도망치며 살아간다. 영화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내용은 이것이다. 그 내용은 마치 안네의 일기’ 같았다. 같은 시기에 나치 치하에 있던 유럽 국가들에서 일어난 내용이다 보니 이런 유사점이 생길 수밖에 없구나 생각하면서 보게 된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 유대인이고,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홀로코스트에 대한 내용도 나오는데, 특이하게도 이 영화는 보통의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와 다르게 나치는 가해자, 유대인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정리를 하지 않는다. 같이 잘 지내다가 나치에게 유대인을 팔아 넘기는 사람들, 같은 유대인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유대인들. 나치가 존재하는 이상 약자의 입장에 서있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이용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인간적이라고 하면 인간적이고, 잔혹한 현실이라고 하면 잔혹한 현실. 그 모습은 마치 우리가 한국사 시간에 배우는 일제강점기 시절 친일파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았다. 


  영화 대부분의 내용은 슈필만이 나치를 피해 도망치는 장면으로 구성된다. 이것만 보면 이 영화는 음악영화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음악이 나오는 부분이 손에 꼽아도 될 정도로 적고, 그나마 음악이 나오는 부분은 슈필만이나 그의 동료들이 음악을 연주하는 장면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 영화는 음악영화라기보단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인물들에게 쉽게 이입할 수 있었다.


  이 영화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음악단이 흥겨운 음악을 연주한다. 독일인 병사는 그 음악을 웃고, 손뼉을 치며 즐겁게 듣고 있다. 병사는 흥이 돋았는지 출근하기 위해 나와있던 유대인들을 잡아서 끌고 나와 춤을 추게 시킨다. 춤이란 보통, 흥겨운 상황에서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춤을 춰야 하는 사람들은 제대로 먹지 못해 삐쩍 말라 병들었고, 그들에게 춤을 시킨 독일인 병사의 표정에만 흥겨움이 가득하다. 결국 엉성한 자세로 춤을 추던 사람들 중 한 명이 넘어진다. 그 사람은 목발을 짚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흥겨운 음악은 계속해서 흐르고, 독일인 병사는 아직도 즐거워한다.  밝고 어두움의 대비가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 저런 장면이 현실에도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지금껏 봐왔던 어떠한 공포영화보다도 공포스러웠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영화는 막바지로 향한다. 슈필만의 처지는 처음 모습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진 상태였다. 말끔한 양복을 입고 따듯한 라디오 녹음실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던 그는 게토의 폐허 속에서 제대로 입지도 먹지도 씻지도 못한 채 하루하루를 겨우 연명해가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안전한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며 나치를 피해 다닐 수 있던 영화의 초중반부 상황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슈필만은 우연히 발견한 통조림을 까먹으려다 그것을 떨어트리고, 마침 그 앞을 지나던 독일군 장교에 의해 발견된다. 그 장교는 보통의 나치 군인들과 다르게 유대인인 슈필만에게 정중하게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하던 사람이냐고. 슈필만은 답했다. 피아니스트라고. 그렇다면 피아노를 연주해보라고 독일군 장교는 말한다. 그렇게 슈필만은 인생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연주를 시작하게 된다.    


  나는 그 연주 장면을 보고 이 영화의 모든 것들이 그 하나의 연주 장면을 위해 존재했다는 것임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포탄과 총알로 엉망이 된 폐허 속 운 좋게 살아남은 피아노를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던 피아니스트가 연주한다. 그가 연주한 것은 다름 아닌 폴란드의 천재 피아니스트 쇼팽이 작곡한 쇼팽 발라드 no.1’. 추위에 손을 벌벌 떨면서도,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안고 있으면서도 슈필만은 폴란드의 선율을 연주한 것이다.


 그의 생사를 쥐고 있는 사람은 독일인. 살아남고 싶었다면 베토벤과 바흐 같은 유명한 독일인 작곡가들의 음악을 연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슈필만은 쇼팽을 연주했다. 그의 영혼만큼은 독일에게 굴복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형장에 끌려가면서도 독립을 외쳤던 독립운동가들이 이러한 느낌이었을까. 슈필만의 혼을 담은 쇼팽 연주는 폐허를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메워갔다. 


  그 연주를 들으며 음악이 세대를 초월한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유럽인도 아니고유대인도 아니며,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세대도 아니다. 하지만 영화에 나타나는 슈필만의 쇼팽 발라드 연주를 들으며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는 어째서일까? 눈물이 나오는 이유는 대체 왜일까연주가 귀가 아닌 영혼에 울리는 느낌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아마도 그것은, 음악이 연주된다는 것은, 그 연주되는 상황이, 그 연주자의 혼이 보고 듣는 이에게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이 아닐까. 


  슈필만의 연주를 들은 장교는 그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몰래 지원해준다. 그 덕에 슈필만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고, 전쟁이 끝난 뒤 피아니스트로서 피아노를 다시 연주하는 장면을 비춰준 뒤 영화는 끝난다. 


  나는 영화를 본 뒤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선이란 무엇이고, 악이란 무엇일까. 전쟁이라는 것은 인간성을 어떻게 훼손하고, 그런 비참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우리는 인간성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철학적인 생각들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런 생각 끝에 나온 결론은 단순했다. 


  “아름다움을 잊지 말자.


   슈필만이 겪었던 일을 생각해보자. 인간성의 상실된 공간, 서로의 미간에 총구를 들이밀던 시기에 그는 수없이 꺾여버렸을지도 모른다. 음악이 가진 감정들, 연주로 만들어내는 행복. 자신이 살아오면서 마주했던 아름다움을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시기에는 그게 정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자신의 아름다움을 지켜냈고, 그 덕에 목숨마저 건질 수 있었지 않은가. 요즘, 혐오의 시대라 불리는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 우리는 계속해서 악한 감정들과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럴 때 비틀린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방법은 간단하다. 열매를 맺어내기 위해서는 씨앗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도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면 색이 바래지 않는 황금처럼, 마음속에 변치 않는 아름다움을 품고 있어야 한다. 그 아름다움은 우리가 앞으로 어떤 상황과 마주하더라도 그것을 이겨낼 힘을 줄 것이다. 


이지훈 (문헌정보학과)


가작에 당선되었다는 문자가 와서 정말 놀랐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선물 같았죠. 곧 크리스마스라 이런 기쁜 일이 찾아온 것일까요?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