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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제 3 호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

  • 작성일 2022-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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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7661
장아현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


202010189@sangmyung.kr 정기자 장아현


우리 사회에서는 이해(理解)가 필요하다. 이해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임이다.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당신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은, 또는 타인의 상황을 보며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들의 사정을 잘 헤아렸다는 뜻이 된다. 우리는 타인과 대화를 나눌 때 이해한다는 말은 그리 어렵지 않게 뱉지만, 진정으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세계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계속하여 내가 아닌 존재들을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쇼핑백과 지우개


때는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었다. 친구와 함께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강서구에 위치한 직업재활센터에 방문하였다. 떠올려보면 그때는 그저 친구 손에 이끌려서 갔던 것 같다. 정확히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모른 채 가벼운 마음으로 말이다. 도착하니 창고 같은 곳에 넓은 책상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넓은 책상을 둘러싼 의자에 많은 사람이 앉아 제각각 바쁘게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담당자분은 우리도 그 의자에 앉게 하고 간단하게 쇼핑백 접는 방법을 설명해주신 후, 우리가 이제 쇼핑백을 접는 일을 하면 된다고 하셨다. 그렇게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쇼핑백만 하염없이 접었다. 쇼핑백을 다 접자, 담당자분은 지우개 포장하는 법을 알려주셨고 또 우리는 한참 동안 지우개 포장을 하였다. 이렇게 같은 일을 계속하니, 슬슬 이게 왜 봉사지? 그냥 일을 대신 해주는 건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친구와 나는 그새 손에 익어버린 일감을 처리하며,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이거 원래라면 돈 받고 해야 하는 부업 아니야?

-그러게, 쇼핑백 접고 지우개 포장하는 게 왜 봉사인 걸까?


그렇게 우리는 답이 나오지 않는 의문을 지녔다. 처음에는 소심한 성격 탓에 묻기를 포기하였지만, 결국 봉사의 정체성에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이 생겨서 나는 조심스레 담당자분께 여쭈었다. 이에 담당자분은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아주 친절하게 해주셨다.


-학생들과 함께 앉아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각기 다른 장애를 지닌 분들이에요. 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일자리를 구하기가 매우 어려워요. 설령 일자리를 구했다고 하여도, 한계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죠. 그게 이 센터의 설립 이유예요. 센터는 이곳에서 일하는 분들이 모두 할 수 있을 정도 난이도의 일감을 외부 업체로부터 의뢰받아요. 그렇게 의뢰받은 일을 하며 급여를 받는 거예요. 장애를 지닌 분들이 일자리 갖고 스스로 돈을 벌도록 해주는 곳이죠. 하지만 결과물이 완벽하지 않을 때가 많아요. 만약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된다면 우리 센터에 일감이 들어오지 않을 거예요. 그럼 그분들도 일자리를 잃게 되니까.


그래서 우리가 계속 쇼핑백을 접고, 지우개를 포장한 것이었다. 그제야 뒤늦게 내가 한 봉사가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큰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봉사활동이라고 하면 어르신분들의 거동을 도와드리는 것, 도시의 쓰레기를 줍는 것 등의 눈에 보이는 직접적인 행위만을 생각했다. 한 번도 그런 어려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봉사를 하고 있음에도 직업재활센터가 무엇을 하는 곳이며, 그곳이 어떤 것을 필요로 할지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떠한 봉사활동인지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을 찾아내지 못했던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이 활동의 쇼핑백과 지우개는 그저 어떤 이들의 어려움을 함께 공유한 것뿐이었는데도 말이다. 나는 그들을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 이것이 어떤 봉사활동인지 고민하는 과정 속에는 오로지 단순노동을 반복하는 나의 상황만이 있었다. 이 경험으로 타인의 구별과 정립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진정 깊게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래도 괜찮은 하루를 보내려면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께 선물 받은 책 <그래도 괜찮은 하루>는 청각장애를 지닌 구경선 그림작가의 수필이었다. 그때 한참 다양한 에세이를 읽고 수필이라는 장르에 질려버린 터라, 흔한 교훈을 전달하는 내용일 거라는 생각이 들자 흥미가 떨어졌었다. 그렇게 한동안 책상 위에만 두고 읽기를 미뤄두었다가 한참 후 보게 된 그 책에서, 내가 몸소 배운 깨달음이 있는 곳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귀가 안 들리는 구작가와 그녀가 지닌 허술한 이력서는 모두에게 거절만 당할 뿐이었다. 이러한 자신의 가치를 고민하며 괴로워하는 모습이 나에게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다. 이력서를 들고 돌아다녀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은, 일자리의 의미를 일깨워줬던 장애인직업재활센터의 봉사활동을 떠오르게 했다. 책에는 이러한 좌절과 역경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극복하는 과정이 담겨있었다. 그림작가라는 직업을 갖게 되며, 인생을 스스로 재정립하고 마침내 자신의 가치를 인정한 것이다. 구작가는 비교하지 않았기에 행복함을 느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감사하며 말이다. 이러한 모습을 처음에는 긍정적이다.’라고 생각했지만, 곧 그 생각은 그만뒀다.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는 것은 내심 행복을 느낄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편협한 나의 전제가 있던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때 다시 진정 이해하는 것의 어려움을 느꼈다



구작가의 토끼 캐릭터 베니’ [사진 출처: instagram.com/hallogugu]


구작가는 청각장애를 가졌기에 남들보다 더 많은 한계를 만났다. 장애는 평범하게 학교에 다니는 것도,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것도 더 어렵게 만들었다. 그중 구작가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바로 스스로의 가치였다. 구작가를 원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이 세상에 필요 없는 존재라고 느끼게 만들었다

코로나 이후 장애인 고용률이 다시 한번 하락하였다. 장애인 구직급여 신청현황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2020년 코로나 확산 이후 일평균 100명에 가까운 장애인이 일자리를 잃고 있는 셈이다. 그간 장애인 일자리의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어왔음에도, 현재까지도 장애인 고용률은 34.6%밖에 못 미치고 있다. 제도개선과 예산 증가 등의 노력에도 정작 실제 고용률은 낮아진 상황이다. 물론 팬데믹 상황은 모든 것을 악화시켰다. 그럼에도 장애인을 비롯한 여러 취약계층 등 상대적으로 더 큰 어려움과 변화를 겪는 이들이 존재하였다. 대개 위기란 것은 약한 것에 더 강하게 닥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팬데믹 상황, 그전에도 어려웠었다. 그간 충분히 이해받지 못해왔던 것이다.



더불어 사는 삶


어리석은 사람만이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다른 낯선’ 존재로 여긴다.

- 톨스토이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中 -


우리네 삶은 어렵다. 또 특정 사람들에게 유독 특정한 어려움이 찾아온다. 장애를 지닌 사람이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어렵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그것의 원인은 무엇일까. 아마도 많은 이들이 바로 그 사람을 본인과 가깝게 여기지 않아서일 것이다. 무언가를 진정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노력해 만든 더불어 사는 삶이야말로 모든 이의 를 더욱 로 만들 것이다. 결국, 이 세상 허물을 모두 벗기면 모든 사람은 같은 크기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양종곤(2022), TV 속에만 있는 '우영우'5년짜리 정책도 무색한 장애인 고용, 서울신문, 2022.07.25. <https://www.sedaily.com/NewsView/268NS67GE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