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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제 2 호 작은 네모에 담긴 프로파간다

  • 작성일 2022-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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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8340
이선우


정기자 이선우 fhfgdvd96@naver.com



이 작은 네모는 조선에서 처음에 ‘우초’라 불렸다. 1884년 개화파 정치인 홍영식이 도입한 이것은 갑신정변의 실패로 우리나라 최초의 우체국 우정총국이 폐지됨으로써 불과 한 달도 사용되지 못하고 10년간 잊혔다. 이후 1895년에 우편업무가 재개되면서 이것은 우표라 불리기 시작하며 민간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1902년에는 고종의 즉위 40주년을 기념하는 우표도 발행되었으나 이것은 대한제국의 처음이자 마지막 기념우표가 되었다. 어두운 세월이 흘러 새로운 나라가 세워진 이후 처음으로 발행된 보통우표에는 이순신 장군과 이준 열사와 같이 나라를 지키다 희생된 위인들의 초상이 들어갔다. 새로운 나라의 우표에서 더 이상 왕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얼마 안 가 우표에는 새로운 왕이 대통령이란 이름으로 등장하였다. 



한복을 입고 등장한 초대 대통령, 양복을 입고 하야하다

[그림 1] 초대 대통령 취임 기념 우표


이승만은 독립협회에서부터 한성정부, 대한민국임시정부, 한미협회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독립운동을 이끌어오며 국내와 해외에서 인지도를 쌓았기에 광복 이후 새로운 정부의 유망한 지도자 후보로 주목받았다. 다만 그의 주 활동지역이 미국을 위주로 한 해외였고 외교적 독립운동을 주도했기에 김구를 비롯한 무장투쟁 독립운동가보다 민족적 색채가 부족하다는 결점이 존재하였다. 이를 의식한 듯 이승만이 처음으로 등장한 우표인 ‘초대대통령 취임’ 기념우표에는 그가 평소에 즐겨 입던 양복을 입은 모습이 아닌 한복을 입은 모습이 담겨있다. 이 우표가 발행되고 얼마 후인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선포하는 자리에서도 이승만 대통령은 한복을 입고 등장하였다. 우표뿐 아니라 한국은행에서 최초로 발행한 은행권에도 한복을 입은 이승만 대통령의 초상이 들어갔다. 이러한 대통령의 이미지는 양복보단 한복이 더 보편적이던 당시 생활상을 고려했을 때 대중들에게 더 친숙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었을 것이다. 

우표와 은행권에 담긴 이승만 대통령의 초상은 한국전쟁을 거치며 점차 원래 그의 모습대로 양복을 입은 초상으로 전부 대체되어갔다.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전쟁 중 강압적으로 발췌개헌안을 통과시킴으로써 독재자의 길로 들어섰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의미심장한 부분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 이후 과거의 정적들이 소멸된 환경에서 새로운 왕으로서 우표에 등장하였다. 그 화룡점정은 1956년에 발행된 ‘대통령 제81회 탄신’ 기념우표이다. 이 우표는 작년에 이미 제80회 탄신 기념우표가 발행되고 뒤이어 발행된 우표로서 당시 관에서 대통령을 찬양하고 선전하던 분위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실감할 수 있는 자료이다. 그해 2번째로 연임한 이승만 대통령을 기념하는 ‘제3대 대통령 취임’ 기념우표를 마지막으로 그는 초대 대통령임에도 우표에 다시는 등장하지 못하였다.



군인 대통령의 시대, 군인과 대통령이 주인공으로 나서다


4.19혁명으로 무너진 제1공화국을 뒤로하고 의원내각제를 도입한 제2공화국은 혼란한 정국 속에 1년이 체 못 가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전복되었다. 이후 30년 넘게 대한민국은 군인출신 대통령의 시대를 거쳐야 했다. 그 시대의 시작을 알린 대표적인 자료가 바로 ‘5.16군사혁명’ 기념우표이다. 이 우표는 처음부터 국민과 해외에 군사정변의 정당성을 알리고 홍보한다는 목표로 군사정변 이후 한 달 뒤인 6월 16일에 발행되었다. 당시 군인 출신인 배덕진 체신부 장관의 명령으로 불과 10일 만에 우정국 실무진과 조폐공사 직원들이 피를 말려가며 발행한 이 우표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빠른 처리속도로 탄생한 기념우표였다. 이후 우리나라의 우표에는 군인과 군 관련 행사들을 기념하는 우표들이 수시로 발행되었다. 대표적으로 ‘5.16혁명 제1주년’, ‘9.28수도탈환 제15주년’, ‘예비군의 날 기념’, ‘재향군인의 날 기념’... 등등 박정희가 5.16군사정변 때 혁명공약으로 내건 반공, 경제개발과 관련된 주제보다 군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기념우표가 더 빈번하게 발행되었다. 

[그림 2] 5.16 군사혁명 기념 우표


박정희 대통령 본인도 우표에 자주 등장하였다. 그는 대한민국 대통령 중 유일하게 기념우표뿐 아니라 보통우표에도 초상이 들어간 대통령이며 전두환 대통령에 뒤이어 우리나라 우표에서 2번째로 빈번하게 등장한 인물이다. 한국 우표에 3번째로 많이 등장한 세종대왕은 역대 11종의 우표에 등장하였으나 박정희 대통령의 초상이 들어간 우표는 22종이나 발행되었다. 참고로 이승만 대통령은 그 뒤를 이어 9종의 우표에 등장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 이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 대통령은 7년의 재임 기간에 무려 30종의 우표에 등장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의 재임 기간인 16년에 반도 안 되는 기간에 이렇게 우표에 그가 자주 등장한 이유는 처음에 투표로 당선된 박정희 대통령에 비해 정통성이 취약했기 때문이다. 전두환은 국민의 선택으로 당선된 인물이 아니었기에 1980년에 집권한 직후부터 대규모 행사나 퍼레이드, 운동 경기 등을 적극 동원하여 자신의 정당성을 홍보하고 동시에 정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유리시켰다. 우표 역시 예외가 아니라서 전두환 대통령이 등장한 홍보성 기념우표들은 거의 전단지 수준으로 많이 발행되어 마침 유행하던 우표수집 붐을 타고 전국 곳곳에서 판매되었다. 그래서인지 이때 발행된 전두환 기념우표들은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액면가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때 우표를 투자의 대상으로 사 모은 사람들은 결국 돈 주고 전단지를 모은 꼴이 된 것이다. 

[그림 3] 12대 대통령 취임 기념 우표



프로파간다와 외화벌이를 한번에?


전두환 정권 이후 대통령이 우표에 등장하는 경우는 취임기념우표와 같이 특정한 경우로 한정되었고 우표를 통한 정부의 프로파간다도 그 정도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여러 나라에서는 우표가 정부의 프로파간다를 위한 수단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특히 과거 공산권 국가들은 프로파간다적인 요소가 다분한 우표들을 대량으로 발행하여 외국의 우표상들에 헐값으로 팔아 선전도 하고 외화도 버는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였다. 이렇게 우표를 외화벌이 수단으로 대량 발행하는 국가들을 ‘우표남발국’이라 부르는데 그 중에서도 악명 높은 곳이 바로 북한이다.

북한은 이미 1970년대부터 우표를 외화벌이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얼마나 많은 우표가 발행되어 전 세계에 뿌려졌는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우표 수집가들도 공식적인 발행량은 믿을 수 없다고 할 정도이다. 북한은 한국보다 훨씬 다양한 우표를 빈번하게 발행했는데 대부분 조선노동당의 선전, 선동 목적이 다분한 우표들이다. 이 우표들을 제외하면 거의 해외수출용으로 발행된 우표들로 해외의 유명한 사건이나 인물 등을 무조건 끌어와서 담은 것들이다. 대표적으로 북한이 영국과 국교를 맺기도 전에 발행된 다이애나비 기념우표들을 들 수 있다. 이런 우표들은 보통 수십 톤 단위로 발행되어 해외에 헐값에 풀렸기 때문에 적어도 50년 전에 발행된 희소한 우표가 아니면 전단지 이상의 가치를 가진 것이 별로 없다. 

북한 우표에서 김일성은 정부가 수립되기 2년 전인 1946년에 발행된 ‘8.15해방 1주년’기념우표에서부터 등장한다. 이후 김일성은 북한에서 발행한 우표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한 인물이 되어 1994년에 사망한 이후에도 우표에 등장하였다. 김정일은 1987년에 발행된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기념우표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흥미로운 점은 김정일이 우표에 전면 등장하기 2년 전인 1985년에 이미 ‘백두산의 비밀 캠프(밀영)’기념우표가 발행되었다는 점이다. 이곳은 북한이 공식적으로 김정일의 출생지라 선전하는 곳으로 사실 김일성이 김정일에게 세습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조성한 곳이다. 이는 북한이 이전부터 수많은 ‘혁명사적지’들을 기념우표에 담아 발행했음에도 이 밀영이란 곳은 매우 뒤늦은 1985년이 돼서야 처음으로 우표에 등장시켰다는 점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렇듯 북한에서 우표는 세습의 밑밥을 깔아두는 정치적 수단으로도 활용되었다. 



우표라는 이름의 작은 전단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우표에서 배운 것이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많다”고 말했다. 물론 우표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은 생각보다 많다. 하지만 동시에 왜곡된 정보를 배우게 될 가능성도 생각보다 크다. 우표에는 언제나 그 우표를 발행한 국가에서 전달하고 싶어 하는 이미지만 담긴다. 당장 거의 모든 나라에서 자국의 우표 수집을 권장한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그 이미지들은 때때로 정치적 목적을 위해 교묘하게 왜곡된 정보를 담기도 한다. 만약 우표만 보고 그 우표를 발행한 국가를 이해한다면 그 어떤 국가에서도 부정적인 면을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역사와 그 시기에 발행된 우표를 동시에 들여다보면 역사를 더 다양한 차원에서 바라볼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표는 그런 의미에서 시대성을 내포한 전단지이며 역사의 이면을 들춰보는 좋은 단서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