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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제 2 호 ‘비효율의 세계’

  • 작성일 2022-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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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라

정기자 주유라 loveura00@naver.com



우리는 효율의 세계에 살고 있다. ‘효율(效率)’이란 ‘들인 노력과 얻은 결과의 비율’이다. ‘효율-적(效率的)’이란 ‘들인 노력에 비하여 얻는 결과가 큰 것’을 말한다. 이와 달리 비효율의 세계는 큰 이익이나 눈에 띄는 결과를 얻기 어려운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효율의 세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비효율을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들에게는 효율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비효율의 세계란 마음이 따르는 곳을 향하는 세계이다. 우리는 학창 시절 효율적인 학업 생활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달렸다. 대입이라는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서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어도 이제 조금 한숨 돌려볼까하는 마음 한켠에는 불안감이 싹튼다. 대학에 들어와도 여전히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효율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효율의 세계 안에서 중요한 것은 보람이 아닌 편리함과 실리이다. 우리는 효율의 세계에 익숙하다. 관심이 가는 수업보다는 학점이 잘 나온다는 수업을 택한 적이 있는가? 배우고 싶은 것을 미루고 컴활(컴퓨터활용능력 자격시험)이나 토익 강의를 결제한 적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효율의 세계에 익숙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비효율의 세계를 관통하는 것은, 마음이 따르는 곳으로 향한다는 점이다. 비효율의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빌어 쓸모없는 세상이 지닌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지난 여름 생일날, 친구들은 내게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다양한 프렌차이즈의 기프티콘을 선물했다. 이제는 관례처럼 굳어진 기프티콘 선물은 편리하다. 밋밋한 생일 축하에 성의를 담을 수 있으며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음료와 간식, 심지어는 비싼 과일이나 고급 한우까지, 무엇이든 클릭 몇 번이면 전달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기프티콘과 채팅만으로 쉽게 마음을 전할 수 있으니 우리는 번거로운 절차를 생략한다. 카카오톡, 네이버 등은 선물의 모든 과정을 현대인의 삶에 맞춰 점차 간소화하고 있다. 심지어는 잘나가는 선물을 나이대에 맞게 추천해주니, 이보다 간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쓴 손편지와 얼굴을 마주 보고 건네는 선물이 그리운 까닭은 무엇일까?

얼굴을 마주보고 건네는 손편지와 선물은 기프티콘이 흉내 낼 수 없는 특성을 지닌다. 그 소중한 특성 중 첫째는 바로 시간이다. 가벼운 채팅 메시지와 함께 기프티콘을 보내는 과정을 떠올려보자. 우리는 마음에 드는 편지지와 적당한 볼펜을 골라 책상에 앉을 필요가 없다. 또박또박 바른 글씨체를 쓰려 노력할 일도 없다. 선물을 사러 갈 필요도, 직접 포장할 필요도, 얼굴을 마주 보고 건네줄 필요도 없다. 그러나 선물 하나를 직접 전하기 위해서는 이 모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선물이 지닌 시간이다. 둘째 특성은 의미이다. 비효율의 세계를 사랑하는 사람은 의미를 선물할 수 있다. 내게는 잊히지 않는 선물이 있다. 통에 담긴 아몬드이다. 아몬드 선물을 받은 나는 그것이 건강이나 시력을 위해서가 아님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것은 의미가 담긴 아몬드였기 때문이다. 아몬드 선물은 같이 읽었던 책의 캐슈넛 선물을 흉내 낸 것이었다. ‘사생활의 천재들’이라는 책의 한 부분에서 작가는 친구에게 캐슈넛을 선물한다. 작가는 존 버거의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의 한 문장을 인용하며 캐슈넛의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사이에 깨문 이 희망들이 넝마인지 새것인지는 중요치 않습니다. 밤을 이겨내고 살아남아 새로운 날을 꿈꾸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커피 좀 있나요?”


인용을 마친 작가는 친구에게 말한다.


“이 사이에 깨문 희망. 나는 바로 그것 때문에 너에게 캐슈넛을 선물해. 네가 밤을 이겨내고 살아남길 바래. 바로 그것 때문에 캐슈넛을 선물해. 네가 피로 가운데서도 너를 확장하길 원해. 바로 그것 때문에 캐슈넛을 선물해. 네가 희망 때문에 생각의 틀을 바꾸길 바래. 그것 때문에 캐슈넛을 선물해. 캐슈넛을 입에 넣고 깨물 때마다 희망을 깨문다고 생각하기를 바래.”


아몬드보다 중요한 것은 아몬드 안에 담긴 의미였다. 상대방은 내게 아몬드를 주었지만 내가 받은 것은 캐슈넛이 될 수도 있었고 동시에 ‘이 사이에 깨문 희망’이 될 수도 있었다. 선물을 통해 시간과 의미를 주고받아본 적이 있다면 알 것이다. 기꺼이 비효율을 감수하면서까지 전하고 싶은 의미가 있음을 말이다.

선물에 시간과 의미를 담을 수 있는 까닭은 직접 건네는 선물이 지닌 물성 덕분이다. 선물에는 건네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손길이 닿아있다. 효율의 세계에서 물성은 환영받기 어렵다. 자리를 차지하거나 유용한 쓸모도 없으니 말이다. 반면 비효율의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은 물성에 열광한다. 그들은 물성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든다. 


“물성이라는 건 생각보다 쉽게 사람을 사로잡아요. 왜, 보면 콘서트에 다녀온 티켓을 오랫동안 보관해두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사진도 굳이 인화해서 직접 걸어두고, 휴대폰 사진이 아무리 잘 나와도 누군가는 아직 폴라로이드를 찾아요. 전자책 시장이 성장한다고 해도 여전히 종이책이 더 많이 팔리고, 음악은 다들 스트리밍으로 듣지만 음반이나 LP도 꾸준히 사는 사람들이 있죠. 좋아하는 연예인들의 이미지를 향수로 만들어서 파는 그런 가게도 있고요.”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中 <감정의 물성>, 허블, 2019, 205쪽


물성을 지닌 것은 선물만이 아니다. 비효율의 세계를 사랑한다면 얼마나 쓸모있는 물건인지보다 그 안에 담긴 아름다움이나 의미가 중요해진다. 얼마 전 나는 지우개를 샀다. 하지만 결코 지우개로 사용할 수 없었다. 좋아하는 화가의 고양이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다. 내 주변에도 수집가가 둘이나 있다. 그들은 만년필이나 우표를 모은다. 그들이 기쁨을 느끼는 순간은 그것들을 용도에 맞게 쓸 때가 아닌 그저 바라볼 때일 것이다. 물건을 수집하고 어루만지는 마음에 효율이나 계산이 끼어들 틈은 없기 때문이다.

‘재미있을 것 같아’, ‘그냥 좋으니까!’ 이렇게 단순한 마음 안에는 씨앗처럼 단단한 힘이 있다. 비효율의 세계에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꾸준히 좋아하는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이 들인 노력에 비해 큰 결과를 얻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자신의 마음을 믿는다. 마케터 김규림은 10년간 블로그에 기록을 남겼다. ‘목요일의 글쓰기’를 시작하고서는 3년 동안 190회가 넘는 글을 쓰기도 했다. 인스타그램 계정 ‘6DP’에는 주 6일 정성껏 밑줄그은 종이신문 몇 장이 올라온다. 간단한 코멘트와 함께 와닿은 종이신문 기사를 갈무리하여 전달하는 것이다. 이들은 한탕의 화려한 이익을 가져다주는 선택지에 솔깃하지 않는다. 단숨에 어마어마한 결과를 바라는 효율의 세계는 잠시 내려놓는다.


가장 아름다운 바다는

아직 건너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아이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날들은

아직 살아보지 못한 날들이다.

그리고 당신에게 해주고 싶은 가장 아름다운 말은

아직 내가 하지 못한 말이다.

-‘파라예를 위한 저녁 9시에서 10시의 시;1945년 9월 24일’


우리를 잡았다.

우리를 감옥에 넣었다.

나를 벽 안으로

너를 벽 밖으로

이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가장 나쁜 것은

알면서, 모르면서

자기 안에 감옥을 품고 사는 것이다.

사람들 대부분 이렇게 살고 있다.

정직하고, 부지런하고, 착한 사람들이.

-‘파라예를 위한 저녁 9시에서 10시의 시;1945년 9월 26일’

나짐 히크멧, 이난아 옮김. 정혜윤, ‘사생활의 천재들’에서 재인용


효율을 벗어난 세계에서 효율보다 중요한 가치는 보람이다. 보람이란 ‘어떤 일을 한 뒤에 얻어지는 좋은 결과나 만족감. 또는 자랑스러움이나 자부심을 갖게 해 주는 일의 가치’이다. 비효율의 세계를 사랑한다는 것은 보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세상은 우리에게 말한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 달리는 사람이 승자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효율의 세계를 택하는 것이 항상 정답일까? 효율만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우리 마음 안에는 감옥이 들어선다.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만든 효율의 감옥에 갇히기도 한다. 이 감옥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간단하다. 비효율의 세계에서 마음이 보내는 소리를 꼭 붙잡는 것이다. 원하는 것, 마음이 끌리는 것을 택해야만 만날 수 있는 세계가 있다. 모든 것이 완벽하거나 대단할 필요는 없다. 비효율의 세계는 엉망진창의 결과도 사랑스러운 눈으로 환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