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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제 1 호 [자하교지의 역사-1970년대] 시작

  • 작성일 202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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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7823
이선우

자하교지 창간호

편집장 정한희

 

1.70 년대 '상영 사대 (현 자하)와의 만남 


 자하의 첫 울음을 보았다. 속은 노랬고 투명한 작은 벌레도 글자 사이를 걸이 다니고 있었다. 한글과 한자가 뒤섞여 한 줄을 읽기 힘든 것이 흘러간 세월을 

께닫게한다. '상명 사대'는 겉모습만 보고 외면하기에는 예쁜 구석이 많은 책이다. 한자로 써진 제목에서 복고풍이 솔솔 불어 온다. 투박하게 통으로 감싼 바닐포장도 나름 멋스럽다. 편집실 문 앞 책장에 트로피처럼 서있던 교지를 손에 쥐고 펼쳐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참 먼저 상명의 언덕에서 지내 A들의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호기심이 차 올랐지 만 한편으로는 어떠를 깨 버리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이제는 역사책이되어 버린 '상명사대'는 어떤 것을 품고 있을까. 


2. 자하의 겉 


 1965 년 상명여자고등기예학원이 상명 여자 사범 대학이라는 '대학'의 명칭을 얻은 지 4 년 만에 교지가 생겼다. 처음 교지의 제호는'상명사대'였으며 1965 년 배상명 학장님의 창간사로 시작한다. 상명사대는 지금의 자하와는 많은 점이 달랐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자의 사용이다. 지금이야 한자는 중의적이거나 생소한 단어의 뜻을 보충하고자 할 때 첨부하여 쓰이는 정도지만 70년대 당시 교지에는 한자를 모르면 한 문장도 알기 힘들 정도로 한자가 많이 섞여있다. 또한 문자를 세로로 나열하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문장을 진행하는 한자 문화권의 특성도 보인다. 이 가운데 영어와 일어까지 섞여있으니 교지 한 권을 읽고 쓰기 위해서는 높은 지식 수준이 필요했을 것 같다. 복잡해 보이는 문장들과는 반대로 내지 디자인은 담백하다. 목차만 컬러로 코팅되어 있고 나머지는 부들부들한 종이에 글과 사진이 흑백으로 인쇄되어 있다. 당시엔 이미지 파일을 찾고 사용하는 것이 상용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 그린 손 그림을 복사하여 첨부한 것이 많다. 그래서인지 더욱 정성스럽고 푸근하게 느껴져 집중이 잘 되었다. 내지 여백에는 동물이나 식물을 작게 그려 넣어 찾아 읽는 재미도 더했다. 

 사진으로 채워진 페이지도 있다. 창간호부터 목차 앞부분에는 학교 행사의 모습이나 캠퍼스 전경을 찍은 사진들을 배치했다. 덕분에 70년대 캠퍼스와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건물로 가득한 지금의 캠퍼스와 달리 당시에는 건물과 강의실도 적고 심지어 포장되지 않은 길목도 보인다. 조금 더 자연친화적 인 캠퍼스였을까. 학교 행사를 기록한 사진에서는 한복을 입은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1975년 개교 10주년 기념행사에는 남자는 양복, 여학생들은 모두 한복을 입고 있었다. 항상 한복을 입고 학교를 다녔던 것은 아니며 중요하고 공식적인 자리에만 한복을 차려 입고 참석했다. 중등교육 세미나 장면에서는 현수막을 수기로 제작하여 걸어 놓은 것도 보인다. 지금은 자하제에 유명 연예인을 초청하여 공연을 보지만 70년대 자하제는 학생들이 직접 연극을하고 노래를 부르며 축제를 이끌며 즐겼다. 교내 사이클 대회를 열고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며 지덕체를 고루 함양하기위한 열정도 보인다. 

 지금은 생소한 학도 호국단의 모습도 담겨있다. 창간호부터 7호까지는 학생회가 교지 편집 위원을 꾸려 상명 사대를 제작했고 8호부터는 상명여자사범대 학교학도 호국단이 제작을 맡았다. 그래서인지 8호부터는 학도 호국단과 집단적인 행사 모습이 많이 나온다. 학도 호국단에서 상명사대를 제작한 것이 교지의 언론 보도 자율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상상해 본다.


3. 자하의 속


 70년대 상명 사대, 현 자하의 구성과 내용적인 부분을 살펴보자. 상명사대는 몇 가지 고정적인 메뉴들이 있다. 교수 논단, 학생 논단, 자하 문단, 번역 소설, 특집 기사이다. 지금의 자하는 교지 편집부 원들이 작성한 기사가 대부분이지만 당시에는 학생회와 학도 호국단이 편집 위원이되어 재학생, 졸업생, 그리고 교수님들에게 원고를 청탁 받아 상명사대에 실었다. 제작의 주체를 학교 구성원들에게줌으로써 학생들의 고민과 감성, 그리고 일상을 더욱 생생하게 담아 내고있다. 상명 사대는 모두가 참여할 수있는 교지 였다는 것에 열린 언론으로서의 공정적인 의미도 갖는다. 

 학교 구성원들이 작성한 고정적인 메뉴들은 크게 학술 관련 글과 문학 관련 글로 나뉜다. 교수 논단은 학술적인 주제를 심도있게 다룬다. 사범 대학의 특성에 걸맞게 교육과 관련된 논평 기사가 주를 이루며 연구 논문을 실어 학술지로의 역할도 하고 있었다. 교수님들과 좌담회를 열고 내용을 기록한 글도 자주 보인다. 좌담회의 주제는 학술적인 내용이 많았고 사회적인 논점에 대해 토론 하기도한다. 여성을 주제로 한 좌담회가 눈에 띄었는데 양성이 사회적으로 평등한 사회, 여성 리더십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이는 여성 운동이 한창이던 70년대에 우리도 여자 사범 대학으로서 참여하고 있었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준다. 

 학생 논단은 자신의 전공에 대한 연구와 올바른 교육의 방향에 대한 고찰을 담았다. 70년대 대한민국은 현재와는 전혀 다른 사회적 분위기를 풍긴다. 독재적인 군사 정권은 국민들의 자유를 억압했고, 잃어버린 인권과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한 국민 운동이 전국적으로 펼쳐지며 사회적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바른 생각을하고 바른 것을 배우고 바른 사회로 이끌기 위해 학생들도 발 벗고 나섰다. 학생논단에서는 자주적인 이념을 확립하고 올바른 교육의 지표를 탐구하기 위한 

고민들이 담겨져 있으며 새로운 역사 창조에도 관심을 나타낸다. 

 거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도 학생들은 문학적 감성을 놓지 않았다. 학생들은 자신이 창작한 시, 소설, 수필을 자하 문단에 실었다. 자하 문단은 교지의 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많았으며 문화, 음악, 미술 등 예술 감상문도 기록했다. 번역소설에는 일문과 영문으로 된 해외 유명 문학 작품들을 번역하고 수록했다. '꽁트'

라는 메뉴도 잠시 등장하는데 재미있는 이야기, 비밀스러운 이야기들도 담아 읽는 재미를 더한다. 

 특집 기사는 70년대 사회적인 주제를 다룬다. 정치적인 문제는 비판적으로 꼬집은 글이 보이지 않지만 사회 문제도 원론적인 이야기에 그친다는 것이 아쉽기 만하다. 몇 호에 걸쳐 특집기사의 주제는 '현대'다. 쉴 새 없이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비정상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전통적인 가치가 등한시되는 것을 보며 어떤 것을 지향해야하는지 고민한다. 6호의 특집 기사는'현대가 잃어가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산업의 발전에만 치중하는 현실과 그로 인해 사라져가는 고향의 모습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드러나있어 인상적이다.


4. 소감 


 불안정한 사회에 흔들리지 않으려는 다짐과 우리가 가야할 곳에 대한 우직한 시선이 가득 담겨있는 상명사대는 오늘날의 언덕을 엄숙하게 만드는 책이다. 읽을 거리가 넘쳐나는 지금과 달리 국가적으로 언론의 내용을 검열하고 통제하던 당시에 상명사대가 얼마나 훌륭한 학술지이자 인기있는 문학지였는지 실감하게 

된다. 선배들이 만들고자 했던 바른 세상에 우리는 얼마나 더 가까이 왔을까. 읽기도, 읽어도 힘든 70 년대의 상명 사대는 가슴 아픈 명저이다. 


- 한글보다 많은 한자 덕분에 같이 상명사대를 읽어주신 어머니와 아버지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