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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713 호 [사설] 세상이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 작성일 2022-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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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5012
김지현

세상이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1903년 미국의 키티호크라는 소도시 인근에서 인류 최초로 비행기가 날아올랐다. 이 비행기는 라이트 형제에 의해 만들어졌다. 인류가 대지, 바다에 이어 하늘을 지나는 순간이었다.

  라이트 형제 중 연장자인 오빌 라이트는 1871년에 태어나 1948년에 사망했다. 1871년은 아직 마차가 운송 수단의 주류를 이루던 시대였다. 윌리엄 오그번이 소개한 문화지체(cultural lag)의 대표 격인 적기조례가 1865년에 도입되었는데, 이 법안은 자동차 앞에 말을 탄 기수가 길을 선도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사회제도의 변화가 기술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생겨난 ‘어리석은’ 것으로 여겨져 왔다. 오빌 라이트는 마차가 주류이던 시대에 태어나, 자동차와 기차를 타고 살아가다 비행기를 만들고 그 비행기가 핵무기를 투하하는 시대에 죽었다. 한 사람의 생애에 일어날 수 있는 진보로는 충분하고도 남은 변화였다.


  그러나 후대에 오늘날의 사람들을 평가하면, 라이트가 겪은 세상의 변화는 차라리 간단한 것으로 여겨질는지도 모르겠다. PC가 태동하던 시기에 태어나, 인터넷의 탄생을 목격했고, 스마트폰이 세계를 뒤덮는 것을 보더니, 이제 인공지능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짓는 시대이다. 고작 마흔 해 만의 일이다. 인간이, 그리고 인간이 만든 사회가 이런 변화를 어떻게 견뎌내야 할까. 우리는 후대에 또 다른 적기조례를 만든 사람들로 기록될까?


  우리는 인터넷으로 놀라운 일들을 이뤄내 왔다. 인류의 지식은 경이로운 속도로 교환되고 쌓이고 있다. 세상 반대편에서 일어난 일을 몇 분 만에 SNS에서 동영상으로 확인하는 건 꿈만 같은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세상이 정말로 우리의 기술을 따라잡고 있는지, 우리가 이렇게 내어 달려도 세상이 적기를 들지 않을지는 모를 일이다. 스마트폰의 뒤켠에 선 N번방을 보라. 평생 갈고닦은 그림체를, 작고 며칠 만에 AI에게 무단 복제 당한 고 김정기 씨를 보라. 현금으로는 버스를 탈 수 없다는 말에 망연한 노인을 보라. 군대에 다녀왔더니 아르바이트 자리가 키오스크로 대체된 복학생을 보라.


  세상이 기술을 따라잡지 못한다고 불만스러워하는 목소리가 있을 것이다. 적기조례는 어리석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이 뒤처지지 않게끔, 올라타지 못해 떨어지는 이들이 없게끔, 기술이 올바른 방향과 올바른 속도로 나아가게끔 둘러보고 고민할 일이다. 보다 긴 시간 동안 두 말의 고삐를 잡아야 할, 바로 당신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