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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696 호 [기자석] 어른 아이

  • 작성일 2021-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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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3547
김지현

  21세기 현대 사회는 각박하다. 우리는 사소한 일 하나까지도 모두 기준을 세우고, 사람들을 평가한다. 심지어는 개개인의 생활 패턴이나 감정들마저도 ‘보편적’인 기준에 따라 정상과 비정상으로 분류된다. 이 기준 때문에 현대인들은 쉽게 지친다.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노력하고, 진짜 ‘나’를 애써 지운다. 세상의 기준과 시선 따위 무슨 상관이냐고, 나만의 기준과 목표를 따르는 것이 인생이라고 당당하게 외치고 싶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당연하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니까. 남들의 시선은 결코 ‘시선 따위’가 될 수 없다. 결국 현대인들은 온전한 ‘나’를 세상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며 살아간다.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온전히 이해해 줄 사람이 있으리라는 기대는 당연히 없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몸만 자랐지, 마음은 꽁꽁 묶여 있는 ‘어른 아이’일지도 모르겠다.


  이 기준 때문에, 꽤 오랜 시간 나는 내가 정말 이상한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세상에 기준에 따르면 나는, 이기적인 데다가 공감능력도 떨어지고 게으른데 미련하기까지 한 쓸모없는 사람이 돼버리고 만다. 나는 상대방의 기분을 읽어내는 눈치는 빠르지만, 그 사람의 마음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내가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상황에 공감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나와 정말 친밀한 사람이고 그 대화가 내가 충분히 공감할 만큼 길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상대방이 무슨 기분이겠거니 이해할 뿐 그 감정에 동화되지는 못한다. 어떤 상황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눈물을 흘리는 것도 당연히 어렵다. 


  친한 친구가 죽는다고 생각해 봐슬프지눈물이 나지 않아?글쎄. 당연히 슬프겠지, 그렇지만… 당장 상상만으로 눈물이 나거나 슬퍼지지는 않는다. 애초에 그런 상상을 왜 하는지 모르겠어서, 몰입도 공감도 되지 않는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솔직하게 대답을 하면 사람들이 날 이상하게 볼 것만 같았다. 감정도 공감능력도 결여된 아이. 실제로 비슷한 반응을 겪은 기억도 있고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나는 영화나 다큐를 보면서 자주 눈물을 흘리고, 친구의 진심이 담긴 이야기를 들으며 엉엉 울기도 한다. 중학교 졸업식 때, 우리 반에서 눈물을 보였던 아이도 나뿐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당연히 사람마다 감정이 격해지는 순간이 다르다는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감정이 북받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직접 그 상황에 놓이면 아이처럼 엉엉 울게 되는 사람도 있다. 그 누구도 이상하지 않다. 그저 그 사람의 성향일 뿐이다.


  감정뿐만이 아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외모, 성격, 사소한 습관 하나까지도 모두 내가 살아온 흔적이다. 우리의 인생이 결코 같을 수 없듯,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꼭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문처럼. 그래도 용기를 내서 마음을 터놓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우리의 성향은 제각기 다르지만, 세상은 넓고 사람도 많으니까. 아흔아홉 가지가 달라도 단 하나, 딱 하나만큼은 닮을 수 있는 거잖아. 그 사람과 경험을 공유하다 보면, 지난 시간들이 위로가 된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위안과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 또 있다는 안도.


  어린아이들이 이런 대화를 자주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있다면 참 좋을 텐데. 그럴 수 있다면, 많은 아이들이 조금은 덜 상처받으며, 정말 ‘어른’으로 자랄 수 있을 텐데. 성장하며 형성된 자아존중감은 한 사람의 평생을 좌우한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면, 현대인들이 스스로를 조금 더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의 기준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고, 온전한 ‘나’를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혹시 이 글을 읽은 학우들에게도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가 마음 속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면, 부디 자책하지 않기를 바란다. 세상에 기준에 완벽히 부합하는 사람은 없다. 어쩌면 인생이란, 그런 모습의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기까지의 여정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당신도 ‘나의 모든 모습을 사랑할 수 있는 날’을 마주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윤소영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