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1]
마츠리(祭り)
일본문화스터디
201810040 역사콘텐츠학과 허신우
1. 마츠리(祭り) 개요
마츠리는 제물을 갖추어 신에게 제를 올린다는 뜻의 ‘마쓰루(奉る)’라는 말에서 나온말이며, 마츠리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사기古事記』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축제로 번역되는 마츠리는 일반적으로 공적이면서 경사스러운 종교적 의식 즉 축제를 의미하는데, 모두 신에게 감사하고 신의 가호를 기대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신을 정성껏 받아드리면 여러 가지 혜택과 복을 주지만 소홀히 하면 벌을 내린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신에게 최고의 음식 준비하여 바치고 예능으로 신을 기쁘게 하였기에 위에서 언급된 ‘마쓰루(奉る)’라는 말이 기원이 될 수 있었다.
마츠리는 일반적으로 지역명이나 신사의 명칭을 따서 “○○마츠리”라 부른다.
2. 마츠리(祭り)의 역사
1) 촌락사회의 마츠리
촌락 사회에서 출발한 마츠리는 대표격인 농촌 마츠리는 농경 사이클에 맞춘 일련의 행사에 따라 행해져 왔다. 봄철에는 경작이나 파종에 앞서 작물이 순조롭게 자라기를 기원하고 태풍과 같은 풍수해나 병충해로부터 보호해 줄 것을 신에게 기원하는 축제, 즉 ‘하루마츠리’가 벌어진다. 그리고 가을에는 풍작을 기뻐하고 신에게 감사하는 의례를 올리는데, 이것이 ‘아키마츠리’다. 이런 농촌 마츠리는 오랜 전통속에서 다양한 변형을 거치면서 일본 사회 전역에 분포하게 된다. 이와 함께 12세기 무렵부터 일본 곳곳에 도시가 발달하면서 도시 마츠리가 만들어지게 된다.
2) 도시 마츠리
도시 마츠리는 전통적으로 행해져 온 촌락의 마츠리와 다른 성격을 가진다. 전통적으로 여름에 행해져온 이들의 마츠리는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전염병이 창궐하는 데 대해 강한 신들의 힘으로 접근하지 목하게 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또 태풍이나 홍수와 같은 천재를 피하도록 기원하는 것에 유래를 둔 마츠리도 많다. 교토의 ‘기온마츠리(衹園祭)’, 오사카의 ‘텐진마츠리(天神祭)’, 도쿄의 ‘산쟈마츠리(三社祭)’, 센다이의 ‘센다이 다나바타 마츠리(仙台- 七タ祭)’ 등이 대표적인 마츠리이다.
3) 현대적 마츠리
한편, 사회가 변하고 집단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기능도 분화되어 마츠리의 역할과 형태가 다양하게 되었다. 신사를 중심으로 한 신앙적, 종교적 색채를 벗어난 성격의 마츠리가 현대에 들어서서 만들어지게 되었다. 삿포로의 ‘유키마츠리’, 고베의 ‘고베마츠리’, 고치의 ‘요사코이 나루코 오도리’ 등이 이에 속한다. 이런 마츠리는 전통적인 것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고, 전후 50년대부터 시작하여 70~80년대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져 ‘현대적 마츠리’라고 볼 수 있다.
50~60년대 일본 사회는 고도의 경제성장을 하는데, 이 기간에 노동력이 도시로 많이 빠져나가면서 지역사회는 심각한 과소화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도시로 빠져나간 젋은이들 때문에 침체된 지역사회를 재생해 보려는 ‘무라오코시(村興し)’라 불린 지역 활성화 정책은 많은 지역사회에 마츠리를 탄생시키게 한다. 또 ‘정주권 구상’이란 이름으로 마츠리를 핵으로 해서 지방 도시권에 정주를 구상한 제3차 ‘전국총합개발계획’이란 국가 정책도 마츠리의 대량샌생산에 일조하게 된다. 즉 70~80년대에 보인 ‘현대적 마츠리’의 엄청난 팽창은 50~60년대의 고도경제성장의 결과로 볼 수 있다.
3. 마츠리(祭り)의 기능
마츠리는 개인, 집단 그리고 지역사회에 따라 그 기능이 다르게 나타난다. 마츠리 때에는 일상생활에서 금지된 것이나 상식적으로는 할 수 없었던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진다. 훈도시(褌)만 입고 거리의 행렬에 참가한다던가, 남자가 여장을 한다던가, 거리에서 노래를 하며 춤을 춘다던가 말이다. 이렇게 마츠리 중의 떠들썩하고 번잡한 장면을 가르켜 ‘오마츠리사와기(お祭騒ぎ)’라고 하는데, 이것은 일상과 다른 마츠리 만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용어이다. 이렇게 마츠리는 개인에게 있어서 일상적인 생업이나 학업에서 벗어나서 평소에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기능을 한다.
마츠리는 어떤 지역의 신사 혹인 지역의 기관을 중심으로 행해지는데, 대개 마츠리를 주관하는 집단에 의해서 가장 중심이 되는 행사가 기획되고 진행되는데, 이때 가장 중요시 되는 것은 참여자들의 단결력이다. 여러 명이 미코시(神輿)를 끌고 누빌 때도 협동심이 확인되고, 수십 명, 수백 명이 마치 한 사람과 같이 추는 군무에서도 팀의 단결력이 중요하다. 이것은 마츠리가 개인이 속한 집단이나 사회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전통적으로 마츠리는 무엇보다도 그 지방의 신인 ‘우지가미(氏神)’를 신사로 모셔서 기쁘게 하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이것은 자신들의 지역을 지켜주고 행복과 건강을 보장해주는 우지가미(氏神)를 중심으로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게 만든다. 마츠리는 행사가 있는 날로 한정된 것이 아니고 이를 준비하기 위한 과정이나 끝난 후가지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된다. 따라서 마츠리를 준비하는 동안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지역에 대한 자부심과 공통된 가치관을
가지게 된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마츠리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이 시기에 타 지역에서 많이 유입되기에 마츠리를 개최하는 지역의 상업은 크게 호황을 누린다.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마츠리를 보러 많이 오기 때문에 외국인에게 일본의 전통문화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마츠리에 사용되는 미코시(神輿)>
4. 일본의 3대 마츠리(祭り)
1) 간다마츠리(神田祭)
간다마츠리(神田祭)는 일본 도쿄 치요다구 간다 지역에서 매년 5월 15일경에 열리는 민속 축제로, 에도막부(江戶幕府)의 초대 쇼군(將軍, 장군)인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1603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해 개최한 축제에서 비롯됐다. 매년 열리던 축제는 1681년부터 격년제로 바뀌어 홀수 해에만 열리게 됐고, 9월이던 개최 시기는 1892년부터 5월로 변경됐다. 1940년부터 짝수 해에는 가게마츠리(陰祭)를 열기 시작했으며, 가마 행렬 등의 주요 행사는 홀수 해에 펼쳐진다.
에도시대에는 히에신사(日枝神社)의 산노마츠리(山王祭)와 격년으로 개최하였는데, 산노마츠리가 무사의 마츠리인데 비해서 간다마츠리는 서민의 마츠리였다. 당시에 쇼군을 알현하기 위
해 다시의 화려한 행렬이 에도성으로 몰렸고, 그 당시 최대의 마츠리였다.
그러나 메이지 시대 도쿄에 전차가 보급되자 운행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점차 사용되지 않게 되었으며, 대신 각 마을에서 화려한 미코시를 만들었고, 이것이 간다마츠리의 주역이 되었다.
주요 행사로는 먼저 신코사이(神幸祭)가 있다. 5월 15일 가까운 토요일에 열리는 대행렬로 아침 8시경에 신사에 모여 출발한다. 규모가 가장 크고 화려한 호렌(鳳輦) 가마를 중심으로 앞과 뒤에 신관, 신사에서 신을 모시는 궁사(宮司), 일본의 전통 의상인 하오리(羽織)나 하카마(はかま)를 입은 지역 주민 등이 연등을 들고 뒤따른다. 500m나 되는 행렬은 저녁 무렵까지 총 30km 거리를 행진한다. 호렌 가마에는 간다묘진의 제신, 남녀 인연을 맺어주는 다이코쿠(오나무치 신), 건강과 행운을 가져다주는 에비스(스쿠나히코나 신), 액운을 막아주는 마사카도(타이라노 마사카도 신) 등을 태워 행진한다.
2) 기온마츠리(衹園祭)
기온마츠리(衹園祭)는 일본 교토 히가시야마 구 기온 지역 및 교토 시내에서 매년 7월 1일부터 31일까지 한 달간 열리는 민속 축제다.
기온마츠리는 옛날에 기온고료에(衹園御霊会)라 불렸다. 869년 세상에 역병이 만연하자, 우라베 히로마로가 66개의 창을 세우고 신센엔이라는 사찰로 미코시 3채를 보내 영혼을 위호하여 재앙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료에(御霊会)를 지냈는데, 이것이 기온마츠리의 기원으로 알려진다.
무로마치시대에 들어서 기온마츠리를 위해 부유한 상공업자 자치 조직을 중심으로 산 모양의 가마인 야마(山)를 제작하고 신이 깃든 창을 꽂아 화려하게 장식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기온 마츠리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로 자리 잡은 야마보코(山鉾) 순행의 시초다. 야마보코는 야마(山, 산)와 호코(鉾, 창)가 합쳐진 말로, 야마는 신화나 고사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을 상징하는 인형을 태운 작은 가마, 호코는 창을 꽂아 화려하게 장식한 커다란 가마다. 현존하는 야마보코 33채 중 29채는 1962년 중요유형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야마보코 순행은 1979년에 중요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됐고, 2009년에는 유네스코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축제의 하이라이트 17일과 24일 퍼레이드를 시작하기 전, 14일과 21일은 ‘요이요이요이야마(宵々々山)’, 15일과 22일은 ‘요이요이야마(宵々山)’, 16일과 23일은 ‘요이야마(宵山)’라고 부르며 일종의 전야제를 진행한다. 도로를 통제하여 음식을 파는 가판대가 즐비한 거리 문화를 즐기며 사람들은 유카타를 입고 축제 분위기를 낸다. 축제는 오후 6시에서 밤 11시까지 가장 활기를 띠는데 이날 밤에는 집집마다 길에 양탄자를 깔고 예스러운 병풍을 전시하곤 한다. 특히 유서 깊은 가문, 단체나 기관, 상점 등에서 소지하고 있던 골동품들을 문 앞에 전시해놓기 때문에 문화재 전시관으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신의 전령 역할을 할 아이를 한 명 정하여 13일부터 퍼레이드가 열리는 17일까지 땅에 발을 대지 않게 한다.
3) 텐진마츠리(天神祭)
텐진마츠리(天神祭)는 학문의 신인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真)를 섬기는 오사카텐만궁(大阪天満宮)의 행사로 ‘덴진사이’라고도 한다. 행사는 7월 24일과 25일의 이틀간 행해진다.
마츠리의 시작은 오사카텐만궁이 건립된 2년 후인 951년 6월 1일부터라고 알려진다. 당시
에는 ‘오가와’라는 강에서 창인 가마보코를 흘려보내고, 도착한 곳을 오타비쇼로 정하여 제장을 마련했다. 또한 몸을 씻어 부정을 없애는 미소기하라이의 의식을 행하였는데, 주의 사람들은 그 제장으로 배를 보내어 이를 맞이했다고 한다. 창을 강에 떠내려 보내는 의식은 오늘날 ‘호코나가시신지(鉾流神事’)의 기원으로 알려지고, 배로 맞이는 하는 의식은 후나토교(船渡御)의 기원으로 전하고 있다.
현재 텐진마츠리는 7월 24일 아침 4시에 ‘모요시다이코’라는 거대한 북과 징의 소리로 시작한다. 8시 경에는 텐만궁에서 사람들의 무병과 재난방지 그리고 마츠리가 무사히 끝나기를 기원하는 제사를 올리고, 9시경부터 호코나가시신지가 시작돤다. 호코나가시신지가 끝나면, 오사카 시내에서 모요시다이코와 징을 울리면서 인형, 사자춤, 우산 춤 등의 퍼레이드가 열리며 저녁에 퍼레이드가 끝나면 행렬은 텐만궁으로 돌아간다.
25일은 먼저 지역 주민의 평안을 기원하는 대제를 올리고, 지붕위에 황금봉황을 장식한 미코시인 고호렌에 스가와라노 미치자네의 신령을 봉안한다. 오후 4시가 되면 마츠리의 중요행사인 리쿠토교(陸度御)가 시작되며, 6시가 되면 후나토교(船渡御)가 시작된다. 후나툐교가 끝나면 모두 텐만궁으로 돌아온다. 모요시다이코와 함께 서로 손뼉을 치고 사자춤이 텐만궁의 본전에 뛰어 들어간 후, 본전에서 간고사이가 행해지면 이틀동안의 텐진마츠리가 끝을 맺는다.
<텐진마츠리(天神祭)의 후나토교(船渡御)>
참고자료
이지선, 『일본의 전통문화』, 제이앤씨, 2008
심경호 외, 『일본을 강하게 만든 문화코드16』, 나무의 숲, 2011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833111&cid=42999&categoryId=42999
[발표 2]
일본의 주거 문화
202010017 윤수희
일본의 전통 가옥에는 대표적으로 눈이 많이 내리는 산간지역에서 보이는 ‘갓쇼 가옥’이 있습니다.
▲ 갓쇼 가옥
갓쇼 가옥은 지붕의 모양이 합장(合掌 がっしょう)하는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지붕에 많은 눈이 쌓여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지붕의 경사를 급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방 중앙에는 취사와 난방용으로 불을 피우는 '이로리'라는 화로를 두었습니다.
▲ 이로리
일본의 전통 주거 문화 중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다다미(畳)는 전도성이 낮아 보온성이 좋고 여름에도 어느 정도 시원하게 해 줍니다. 하지만 청소하기가 까다롭고 방수성이 낮아 금방 축축해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다다미가 깔린 방을 와시쓰(和室)이라고 합니다. 이 와시쓰에는 다다미와 함께 자주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도코노마(床の間)입니다. 무로마치(室町)시대에 주택의 접객 공간에는 그림을 걸어 장식하는 것이 유행하면서 그림을 거는 공간이 생겼습니다. 이 공간이 시대를 거쳐 도코노마가 되었습니다.
일본의 주거는 기본적으로 다습한 기후 때문에 난방보다는 통풍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또한, 지진이 자주 나기 때문에 집을 지을 때 콘크리트보다는 목조주택을 선호합니다.
▲ 목조주택
일본의 전통 가옥은 고온다습한 기후 때문에 통풍을 위해 개방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기둥과 대들보로 만들어져 쇼지문(障子門, しょうじもん)나 후스마(襖) 등이 벽의 기능을 대신했습니다. 이것을 걷어내면 안팎의 구분이 없어지고 하나로 연결되었습니다. 이렇게 칸막이가 명확하지 않은 것은 주거 생활이 프라이버시 지향이 아니었음을 말해줍니다.
▲ 쇼지 ▲ 후스마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프라이버시가 중요시되면서 대개 현관에서 거실이 바로 보이지 않고 복도를 통해 각 방의 프라이버시가 완벽하게 보장되는 평면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보통 욕실과 화장실이 따로 되어있습니다. 왜냐하면, 청결과 위생이 필요한 욕실에 변기가 있다는 건 이상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보통 화장실과 욕실이 따로 있다.
참고문헌
고용고동부, 일본 화장실과 욕실이 분리되어있는 이유, 2010.01.14.
https://blog.naver.com/molab_suda/30078204094
윤장섭, 일본의 건축, 네이버 지식백과, 2000.11.20.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273313&cid=51215&categoryId=51215
정형, 사진 통계와 함께 읽는 일본, 일본인, 일본문화, 네이버 지식백과, 2011.09.05.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529266&cid=62068&categoryId=62068
[발표 3]
202010018 윤정윤
<젓가락 예절>
移り箸 우츠리바시 - 일본식 식사에서, (반찬과 밥을 번갈아 먹지 않고)
반찬을 집어 먹은 젓가락으로 곧 다른 반찬을 집어 먹는 일
探り箸 사구리바시 – 한 식기 안에서 좋아하는 것만 고르려고 휘적이는 행동
握り箸 니기리바시 – 젓가락 머릿부분을 그대로 움켜쥐는 것
持ち箸 모치하시 – 그릇과 젓가락을 함께 드는 것
刺し箸 사시바시 - 음식을 찔러 집는 젓가락질을 하는 것
舐り箸 네부리바시 – 식사하며 젓가락을 핥는[빠는] 것
立て箸 타테바시 – 밥에 젓가락을 세워 꽂는 것
渡し箸 와타시바시 - 식사 도중 밥그릇 위에 젓가락을 올려놓는 행동
寄せ箸 요세바시 - 식사 때, 젓가락으로 그릇을 자기쪽으로 당기는 일
<젓가락 잡는 법>
- 집는 법
1. 중앙 부분을 오른손으로 잡는다.
2. 왼손으로 젓가락 아랫부분을 받친다.
3. 오른손을 끝부분으로 이동하고 손을 아랫방향으로 바꾼다.
4. 왼손을 떼고 바르게 젓가락을 잡는다.
- 바르게 쥐는 법
1. 젓가락 끝에서 2/3가 되는 부분을 잡는다.
2. 위쪽 젓가락은 엄지・중지・검지 손가락 3점으로 잡는다.
3. 아래쪽 젓가락은 약지・소지로 자연스럽게 잡는다.
- 밥그릇과 함께 들 때
1. 그릇을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으로 젓가락을 집는다.
2. 그릇을 든 손의 검지와 중지로 젓가락을 잡는다.
3. 오른손 젓가락 끝에서 젓가락 아래로 옮겨 바로 잡는다.
- 마무리
젓가락을 상에 놓을 땐 상 앞쪽으로 한일(一)의 방향으로 젓가락 받침과 함께 놓는다.
만약 1회용 젓가락으로 젓가락 받침이 없었을 경우에는 포장을 접어 위에 올린다.
사용 후에는 접은 안쪽의 공간이 있는 부분에 넣어두거나 젓가락 포장의 1/3 정도에 넣는다.
포장마저도 없는 경우에는 식사도중엔 젓가락의 앞부분을 그릇의 왼쪽부분에 걸쳐두고 식사가 끝나면
식사 전과 같은 모양으로 그릇의 앞부분에 나란히 둔다.